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진이 몇 방울의 혈액으로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혁신적 진단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검사(NGS 액체생검)로는 어려웠던 초기 폐암까지 찾아낼 수 있어 의료계 주목을 받고 있다.
UNIST는 조윤경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팀(이하 조 교수팀)이 전처리하지 않는 극미량의 혈장(혈액에서 혈구가 가라앉은 누런 액체)으로 암 돌연변이를 진단할 수 있는 'EV-CLIP'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관련 연구 결과는 11일 출판된 'ACS 나노'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EV-CLIP'은 혈액 속 나노소포체(EV)와 분자비콘을 담은 인공 리포좀(CLIP)을 머리카락보다 가는 관 안에서 융합해 암 세포를 찾는 기술이다. 암세포에서 흘러나온 나노소포체에는 mRNA, miRNA 같은 유전 변이 정보 물질이 담겨 있고, 분자비콘이 이 정보 물질과 만나면 형광 신호를 내보낸다. 이 과정을 이용해 핏방울 4~5개 정도의 양인 20마이크로리터(μL) 혈장만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
조 교수팀은 리포좀 표면을 전하를 띄게 설계해 검출 민감도를 높였다. 감도가 높으면 특정 암 돌연변이 유무 확인뿐만 아니라 초기암 진단, 치료 후 잔류 암세포(미세잔여질환) 모니터링 등에 활용 가능하다.
혈장을 전처리해 나노 소포체만 따로 추출하거나 유전자를 증폭하는 등 복잡한 전처리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환자 83명을 대상으로 한 혈액 분석 임상실험 결과, 폐암 항암제 선택에 중요한 EGFR 유전자 돌연변이를 100% 정확도로 찾아냈다. 기존 NGS 액체생검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폐암 1, 2기 환자의 돌연변이도 정확하게 진단했다.
조 교수팀은 'EV-CLIP'을 바이오벤처 랩스피너(LabSpinner)에 기술 이전해 병원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진단 키트 형태로 개발할 계획이다.
조윤경 교수는 “혈액 몇 방울로 암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 효과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환자의 고통과 부담을 크게 줄이면서도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과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고, 조 교수팀과 오인재 전남대병원 교수팀, 김미현 부산대병원 교수팀, 류정선 인하대병원 교수팀이 공동 수행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