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국내병원 '디지털전환' 가속…지속가능성장 무기

[이슈플러스]국내병원 '디지털전환' 가속…지속가능성장 무기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계에 디지털전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환자 편의를 높이는 단편적인 서비스가 아닌 병원 생존과 직결된 지속가능한 성장 도구로 인식,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전 산업계에 보편화되면서 'AI전환(AX)'은 병원 디지털전환에도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향후 병원의 글로벌 경쟁력이 디지털혁신에서 나올 것이로 점쳐지는 가운데 우리도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전방위로 확산되는 디지털전환 바람

올해 들어 상급종합병원부터 종합병원급까지 다양한 의료기관들이 주요 미션으로 '디지털전환'과 '디지털혁신'을 설정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산 시스템 고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제는 병원 전 분야에 걸친 AI, 모바일 전환으로 업무와 서비스를 혁신하는 쪽으로 개념을 확장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병원은 의료용 거대언어모델817(LLM817) 개발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부터 고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인프라 구축을 준비해 왔다. 이렇게 개발한 알고리즘은 AI임상시험센터 등 연구 영역에 접목하는 것은 물론 진료영역에도 진단보조, 예후예측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중앙대광명병원은 올해 목표를 '디지털전환(DX)를 넘어 AX 선도기관'으로 설정했다. 병원은 2022년 개원과 함께 디지털전환 첫 단계로 로봇자동화프로세스(RPA)를 도입했다. 지난 1월 기준 진료, 행정 등 실무 전 영역에서 76개 RPA를 운용하고 있다. 올해는 이 RPA를 AI로 고도화하기 위해 에이전트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1인 1 AI' 업무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게 핵심 목표다.

한림대의료원은 지난해까지 낙상·욕창 예측, 정맥염 발생 예측 등 40개가 넘는 AI 모델을 개발해 실제 의료 환경에 적용한 바 있다. 올해는 환자 안전과 의료진 업무 효율 증대를 위해 14개 AI 예측 모델을 추가 개발할 예정이다.

음성인식AI 활용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건양대병원 등은 올해 음성인식AI를 활용한 의무기록 고도화 프로젝트에 착수할 계획이다. 진료 시 환자와 의사간 대화를 인식해 전자의무기록(EMR)에 자동 입력하는 게 핵심이다.

◇업무혁신·비용절감 효과 커…선진국과 격차는 여전

병원들이 디지털전환에 적극적인 것은 IT투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전산 시스템 고도화가 핵심이었던 IT 혁신은 회수 없는 일방적인 투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전환은 의료 서비스 고도화에 따른 환자 유치 확대, 모바일 전환에 기반한 환자 편의성 증대, 업무 혁신에 따른 비용절감 등 경영지표를 개선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실제 대형병원들은 환자의 진료경험 향상을 위해 모바일 제증명 발급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도 올해 진료비영수증, 진료비세부내역서까지 모바일 발급이 가능하도록 확대했다. 병원 이동 간 가장 불편했던 영상정보 전달 역시 최근에는 클라우드를 적용한 영상등록 시스템으로 전환해 편의성을 높였다.

무엇보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은 병원 디지털전환 촉매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공의가 대거 이탈하며 교수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됐고, 병원 구조개선 등 본연 경쟁력 확보가 시급해지면서 디지털전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엽 건양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장)은 “디지털전환 속도가 빨라진 것은 AI 기술이 범용화 되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전공의 이탈에 따른 업무 부담 경감과 업무혁신을 통한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디지털전환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병원의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되지만 미국 등 선진국과 격차는 크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부분의 디지털전환 프로젝트가 파편화되거나 시범 적용에 그치고 있어 조직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선 자국 빅테크 기업과 병원이 손잡고 의료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메이요 클리닉은 심혈관, 종양 등 영역에서 AI와 결합해 5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고, 생성형AI를 활용한 임상 노트 작성은 물론 비전AI 기반 수술영상 교육 시스템 등도 구축했다. 인터마운틴 헬스는 인터마운틴 벤처스라는 기업을 세워 AI 기반 환자 참여플랫폼, 혈액 기반 암 조기발견 솔루션 등을 개발·투자하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AI 한계는 일부 진료과나 프로젝트 단위로 투자가 이뤄진다는 점”이라면서 “조직이나 기관 차원에서 AX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단계별 추진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