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관행상 이루어졌던 은행과 가상자산거래소 간 독점 계약 구도가 흔들린다. 은행권이 거래소 유치에 적극 나서며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올해부터 가상자산 법인계좌가 허용되면, 거래소 실명계좌 제휴도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올해 10월 케이뱅크와 업비트 간 계약 종료를 앞두고 상반기부터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아직 거래소와 제휴가 없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그룹 차원에서 전폭 지원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4월까지 업비트 인증에 하나인증서를 사용하면 경품을 제공하는 등 저변을 넓히는 중이다. 우리은행 역시 업비트 제휴 추진을 위한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유치에 나선 은행은 단기적으로 기존 계약 종료를 노리는 동시에, 법인계좌 허용을 계기로 특정은행과 거래소 간 독점이 깨지는 상황을 기대 중이다. 이미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법인 가상자산 시장을 노리고 암호화폐를 제3장소에 보관하는 '커스터디(수탁)' 사업에 직·간접으로 투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을 중심으로 개인과 법인계좌를 분리해 실명계좌를 제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면서 “은행과 대형거래소는 기술적으로 복수 채널 원화 입출금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독과점이나 의존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1은행-1거래소' 체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기준 케이뱅크 예수금 중 17% 가량이 업비트 예치금인 것으로 나타나,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특정거래소 의존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은행권이 가상자산 거래소 구애에 적극 나선 것은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 가상자산 거래는 2023년 하반기 대비 △일평균 거래규모(67%) △시가총액(27%) △원화예치금(3%) △거래가능 이용자(21%)가 증가했다.
올해부터 가상자산 거래서 법인계좌가 허용되면 성장세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는 올 상반기 법집행기관과 비영리법인(학교, 기부금단체) 등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현금화 목적 매도를 허용한다. 하반기에는 일부 기관투자자부터 투자·재무 목적 매매 실명계좌를 발급한다. 일반법인 참여는 2단계 입법과 외환·세제 등 관련 제도 정비 후 검토할 예정이다. 수년에 걸쳐 가상자산 실명계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은행 입장에서 가상자산 거래소와 연결한 실명계좌는 '노다지'나 다름없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 은행 신규계좌 등록 수는, 이달 빗썸 실명계좌 등록을 시작한 이후 10일 동안 직전 2주에 비해 4배 가량 상승했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 방지를 이유로 가상자산 거래서 사실상 '1은행-1거래소' 구도만 허용 중이다. 2018년 '가상자산 실명제' 도입 당시, 거래소는 비용과 관리를 이유로 2곳 이상 은행과 거래할 필요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독점계약 체제가 굳어졌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