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3대 강국(G3) 도약을 선언한 정부가 '국가AI컴퓨팅 센터'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2027년 컴퓨팅센터 출범을 목표로 사업자 공모가 진행 중이며 최대 2조원 규모의 민·관 합작 투자를 통해 1엑사플롭스(EF·1초에 100경번 연산) 수준의 AI컴튜팅 자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전 세계는 이미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으며, 한국이 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속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세계 각국의 투자 규모는 압도적이다. 미국은 AI기술과 인프라에 5000억달러(약 720조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GAIA-X'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일본은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AI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는 파리 AI 정상회의에서 1090억유로(약164조원) 투자계획을 밝혔다. 중국은 저비용·고성능 AI 슈퍼컴퓨터인 딥시크(deepSeek)를 공개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AI 컴퓨팅 인프라는 단순한 기술 기반 시설을 넘어서, AI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전략적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고성능 GPU, 대규모 데이터 저장소, 초고속 네트워크 및 에너지 효율적인 데이터 센터가 필수적이다. 이 인프라는 AI 모델의 정확성, 처리 속도 및 응답 시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AI 기술의 발전과 상용화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해보여 아쉽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엔비디아의 '호퍼(Hopper)' 칩을 48만5000개 구매했으며, 메타는 22만4000개, 아마존은 19만6000개, 구글은 16만9000개를 확보했다. 반면 한국은 겨우 1만8000장을 내년 상반기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에서도 열세다. 미국은 720조원, 프랑스는 164조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빅테크 4대 기업(구글, 아마존, MS, 메타)의 투자금만 430조원을 넘어섰다. 심지어 메타는 새로운 AI 데이터 센터 건설에만 2000억달러(약 286조원)를 투입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2조원 투자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AI G3 강국 도약은 단순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산업계는 이미 초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충, 한국어 데이터 부족 해소, AI 인력 양성, 교육과정 개편, 파격적인 투자,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제야 컴퓨팅 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을 뿐,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판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비전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챗GPT나 중국의 딥시크 R1과 같은 모델을 한국에서도 개발해야 한다는 과감한 제안이 없다. 결국, 우리 기업들은 해외 AI 기업에 API 사용료를 지불하며 남이 만든 'AI 심장'을 빌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개인 사용자도 매달 20달러씩 해외 기업에 지불하고 있어 국부 유출이 심각하다.
AI가 지배할 미래, 그 핵심은 기술 자립성이다. 국내 기업과 연구 기관이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최적화된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철강, 자동차, 가전, 조선 등 전통 제조 강국의 위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산업별 AI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 헬스케어, 금융, 교통, 안전,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혁신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AI 사용의 첫 번째 수요자가 되어 AI 시장을 창출하고, 지자체, 금융회사,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스타트업, 중소기업이 맘 놓고 사용할 GPU 지원도 절실하다. 특히 정부와 국회는 대한민국을 'AI정부' 'AI 중심국가' 대전환시켜야 한다.
AI 컴퓨팅 센터 구축은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할 전략적 자산이다. 한국이 AI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실행이 필요하다. 이제는 결단할 시간이다.
최은수 aSSIST 석학교수·인텔리빅스 대표·CES2025 혁신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