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한다. 경쟁사에 비해 과도한 차입 부담을 진 상황에서 각종 유통 규제에 묶여 소비 패턴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가 신청한 기업 회생 절차에 대해 개시 결정을 내렸다. 별도 관리인 선임 없이 현 조주연·김광일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한다. 홈플러스는 오는 6월까지 재무구조 개선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회생 계획을 수립한다.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을 신청한 것은 신용등급 하락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 기업어음·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렸다.
신용등급 하락은 금융 비용 상승으로 직결된다. 재무 개선이 없다면 오는 5월 중 자금 부족 사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선제적으로 기업 회생에 착수했다는 것이 홈플러스 측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예견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5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통해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 받아 충당한 인수 자금만 5조원에 달한다.
MBK는 인수 이후 점포 매각 등을 통해 차입금 상환에 주력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업황 악화로 금융 부담을 털어내지 못했다.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비용에 재무 구조는 악화됐고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도 미흡했다는 분석이다.
혁신 발목을 잡은 유통 규제도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제정으로 대형마트는 현재까지 월 2회 공휴일 의무 휴업, 영업시간 제한(새벽배송 제한) 등 규제를 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됐지만 대형마트는 규제에 묶여 e커머스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다.
발목 잡힌 대형마트 업계는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하향세다. 지난 5년간 점포 수는 32개가 줄었고 홈플러스는 10여 개 매장의 추가 유동화를 예고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대형마트 빅3(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매출 비중은 전체 유통업체 매출 20.2%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11.9%까지 줄어들었다.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한 홈플러스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임차료를 계상한 리스부채를 제외하고 운영자금 차입을 포함한 금융 부채는 현재 약 2조원 안팎이다. 총 4조7000억원이 넘는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회생 계획이 확정되면 금융 채권자 조정도 어렵지 않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는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납품 대금 정산 등이 일부 지연되는 등 유동성 문제가 불거져왔다고 지적한다. 일부 식품사는 납품 대금에 대한 채권 추심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는 회생 개시와 별개로 매장 영업, 협력사 거래가 정상 진행된다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는 국내 내수 유통시장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징조”이라고 말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