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20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SW) 1위 미국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350억달러(약 50조원)규모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 양사의 자산 매각을 이끌어내 반도체 칩과 광학·포토닉스 제품 설계 SW 시장 경쟁을 보호함으로써,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사업자 피해를 사전 예방한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이날 시높시스가 약 350억달러에 달하는 앤시스 주식 전부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자산 일부를 매각하는 것을 조건으로 승인했다.
공정위는 반도체 칩 설계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SW △광학 SW △③포토닉스 SW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을 중점 심사했다. 세 시장은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사업 영역이 중첩돼 '수평결합'이 발생한다. 기업결합 이후 세 시장에서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아래와 같이 합산 점유율이 과반을 훌쩍 넘어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공정위는 세개 SW 시장의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각 시장별로 시높시스 혹은 앤시스의 관련 자산 일체를 매각하도록 했다.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SW 시장에서는 앤시스와 그 계열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산 일체를, 광학 SW와 포토닉스 SW 시장에서는 시높시스와 계열사가 자산 일체를 매각하도록 조치했다.
이병건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종전에 시높시스와 앤시스 사이에 존재하던 직접적인 경쟁이 사라지게 된다”면서 “시높시스와 앤시스로부터 제품을 구매하는 국내외 고객사들도 선택지가 축소되고 양사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 시장 모두 고도의 기술력을 요해 신규 경쟁자가 진입하기 용이하지 않은 점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시정조치로 시높시스와 앤시스의 자산 매각을 통해 반도체 칩과 광학·포토닉스 제품 설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SW 시장에서의 경쟁을 보호할 수 있다”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부상, 공급망 재편 등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치열하게 경쟁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칩 사업자 등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자산 매각 조치의 내용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8월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이른바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를 처음 활용했다. 기업결합 당사자인 기업에게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방안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공정위는 이를 참고해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