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가 공식 출범하며, 기술이 전통 금융 질서를 흔드는 이른바 '금융의 특이점'을 조망하는 논의의 장이 열렸다. 첫 행사에서는 연사로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이 가상자산 산업의 구조,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오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가능성과 리스크 등 폭넓은 주제를 질의응답 형식으로 심층 다뤘다.
김형년 부회장은 증권플러스와 업비트 거래 시스템의 개발 및 사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실무 전문가다. 경험을 토대로 기술적 가능성과 정책 제약 간의 간극, 제도화에 따른 딜레마, 자본시장 관점에서 확장 가능성 등을 강조했다.
〈참석자〉 (가나다 순)
△김용범 해시드 오픈리서치 대표 (전 기획재정부 1차관)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 (전 금융보안원장)
△유재수 간사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윤종원 연세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이억원 서울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전 기획재정부 1차관)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서병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종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
△좌장=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 좌장(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을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는 무엇인가. 이를 일반인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
가장 흔한 오해는 '가상자산'이라는 명칭이다. '가상'이라는 말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다만 실제로 디지털상에서 존재하는 자산이다. 블록체인은 골프 경기 스코어카드와 유사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점수를 기록하고 비교해 서명하는 방식처럼, 블록체인은 여러 참여자가 데이터를 동시에 기록하면서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이 과정을 디지털로 자동화한 것이 블록체인이다. 거래소는 스코어카드를 정산하는 클럽하우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채굴은 누가 스코어카드 기록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수학 문제를 가장 먼저 푼 사람에게 권한을 주는 방식이다. 블록체인을 '채굴'이나 '가상자산'처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용어가 아닌 기술적 원리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디지털 자산의 가치를 공정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 윤종원 연세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내재가치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 시장이 왜 존재하고 거래가 활발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 김형년
비트코인은 그릇인데 알맹이가 없는 그릇이라 생각한다. 내재가치를 억지로 부여하려 하면 논리가 어긋난다. 가치의 근거는 철학과 믿음의 영역에 가깝다. 실제 투자자들도 오를 것 같아서 산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사고팔 수 있고, 출금도 실시간이다. 코인 시장은 자발적 신뢰 기반에서 출발했고, 이것이 거래소에 자산이 쌓이게 만든 원동력이다.

◇ 유재수 간사
코인과 주식은 권리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내재가치는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밈코인처럼 사회적 효용이나 본질적 가치가 의문인 사례도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나.
◇ 김형년
회사가 잘 되면 코인이 오르는 구조라면, 주식처럼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다만 코인은 주식의 속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밈코인은 머니게임 속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내재가치를 논하기 어려운 것도 맞다. 하지만 자본시장 역시 유사한 거래 구조를 갖고 있고, 기업 자금 유입이 가능하다면 자본시장의 역할을 한다. 도지코인처럼 주인이 없고 발행량이 무제한인 구조가 유상증자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투명하다는 인식도 있다. 이 구조가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밈코인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 기존 금융과 어떤 방식으로 융합할지 고민할 시점이다.
◇ 윤종원 연세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과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규제 차익, 투자자 보호, 거시경제 안정 등 관점에서 어떤 방향이 바람직할까.
◇ 김형년
기존 금융과 가상자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핵심 과제다. 가상자산이 기존 금융 안에서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이 전 세계 거래소에서 거래되듯 자산의 국경없는 유통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한국도 글로벌 거래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산업적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기술적 기반과 발전 가능성을 명확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동시에 과세, 자금세탁 방지 등 컴플라이언스 문제는 핵심 이슈다. 기술을 통해 기존보다 더 안전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고객 불편을 줄이기 위한 투자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 이억원 서울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가상자산은 전통 금융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구조일 수 있을까.
◇ 김형년
초기 코인 공개(ICO)는 기존 자본조달 방식과 비교해 핵폭탄급 효과를 가진 구조다. 기존 자본시장과의 가장 큰 차이는 국경이 없다는 점이다. ICO는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으며, 전 세계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일대일로 연동돼 있고, 원화-테더(USDT) 시장은 슬리피지(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이는 은행의 환전 수수료 구조를 기술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시장은 이미 은행 환전 수수료 모델을 위협하고 있으며, 은행이 이를 어떻게 대응하고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금융과 경쟁이면서 동시에 보완적인 관계다.

◇ 이억원
가상자산이 단순 거래를 넘어 자본조달이나 예금·대출 중심의 뱅킹 기능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 김형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자산을 디지털로 발행하고, 다수의 소액 자산을 모아 대출로 전환하는 구조도 구현이 가능하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다. 이를 새로운 금융의 진화로 볼 것인지,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만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
은행이 리스크와 수익성 문제를 고려했을 때 가상자산 업계와 협력해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도 있다. 어떻게 보나.
◇ 김형년
가상자산은 은행보다는 자본시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기존 시스템의 비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환전이나 해외 결제 분야에서 실질적 활용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한국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실험할 필요가 있다. 달러 대비 경쟁력이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시장성과 기술 기반은 충분하다. 자본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 새로운 질서를 시험해볼 수 있는 시점이지 않을까 한다.
◇ 윤종원
전통 금융에는 투자자 보호, 자금세탁 방지 등 최소한의 규제가 존재한다. 가상자산 시장도 자금 조달 수단으로 기능하려면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보나.
◇ 김형년
2017년까지는 가상자산 시장에 아무런 제도도 없었고, 사업자는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권한도 책임도 없었다. 실시간 입출금이 가능한 환경에서 보이스피싱, 사기 자금, 환치기 등을 스스로 차단하면서 자율적인 컴플라이언스가 시작됐다. 당시 업비트는 하루 수천 건의 입금 요청으로 금융결제망과 서버가 마비됐고, 신규 가입도 일시 중단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시그널과 음모론이 퍼지며 시장이 과열됐고, '김치 프리미엄' 현상도 극대화됐다. 이후 케이뱅크와의 제휴는 여러 은행의 거절 끝에 성사된 것으로, 시장 신뢰 회복의 전환점이 됐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시장 내부의 생존 본능과 자정 노력도 함께 작동해야 진짜 컴플라이언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 윤종원
가상자산 분야에서 아직 규제가 미비하거나, 오히려 제도화로 인해 부작용이 생긴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가.
◇ 김형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법이 생기면서 오히려 시장 대응이 어려워진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이용자 보호법이 생기면서 거래소가 임의로 코인 입출금을 제한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 만들어졌다. 의도는 재산권 보호지만, 실제로는 거래소가 이상 징후를 감지해도 재량적으로 입출금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일률적으로 법이 정해지다 보니, 신뢰 기반의 재량 행사가 제한되고 있다. 정작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확인하고도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법을 지키는 것이 곧 고객 보호라는 접근만으론 놓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낀다.
◇ 유재수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정책을 전환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이 암호화폐 친화적으로 돌아섰는데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이 있는가.
◇ 김형년
미국이 암호화폐 친화적으로 돌아선 이유는 달러패권을 지속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스테이블 코인 USDT가 나온 이유는 자국내 핀테크 결제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결제·뱅킹 시스템이 워낙 잘 갖춰져 있어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무역 대금 결제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자연스러운 수단이 될 수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책 샌드박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실험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달러와 경쟁하긴 어렵더라도, 자체적 활용성과 전략적 가치는 갖고 있다고 본다.

◇ 김용범 해시드 오픈리서치 대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국내 투자자와 금융시장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 김형년
전제조건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거래에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코인 거래가 가능한 환경을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실질적인 수요가 생긴다. 거래소를 운영해본 입장에서, 투자자 예치금 보호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현재 이용자보호법이 잘 마련돼 있어 이를 기반으로 더 다양한 보호 장치를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 거래소로 자산을 이동할 때 예치금 이용료를 블록체인상에 기록하고, 수수료를 자동 부과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청산결제 리스크와 '코인런' 가능성도 함께 커질 수 있다. 기존 금융처럼 역할 분리를 통해 투자자 보호를 구현할 수 있을까.
◇ 김형년
청산결제 리스크는 자산 운용이 아니라 '신뢰' 문제라고 본다. FTX나 델리오 사례는 고객 자산을 실제로 운용에 썼고, 그 과정에서 자산 불일치가 발생했다. 업비트는 모든 거래소 보유 자산과 고객 자산을 장부상 일치시키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장부를 실시간으로 정리하고, 고객 보유 코인과 블록체인 기록이 정확히 일치하도록 관리 중이다. 해킹 등 외부 위험에 대해서도 거래소가 책임지고 보상한 경험이 있다. 중개·보관·운영 주체 간 이해 상충을 방지하려면, 기술적 투명성과 내부 통제 시스템이 핵심이라고 본다. 완벽한 해답은 없지만, 투명한 장부와 책임 구조 없이는 신뢰를 회복할 방법도 없다.
◇ 안수현
현재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에는 공시나 기금 적립 등 기본적인 제도적 규율이 부족하다. 감사와 인증 체계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 김형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회사 구조를 분리하는 것보다 외부 감사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본다. 거래소나 발행 주체의 규모에 따라 감사 범위와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일정 기준 이상이면 독립된 외부 인력이 정기적으로 회계·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구조는 꼭 필요하다. 투명성과 책임 구조 확보를 위해 감사를 통한 신뢰 확보는 제도 정비의 핵심이 될 수 있다.
◇ 조윤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김형년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이 자리에 어렵게 나온 이유는 업계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라도 풀고 싶어서다. 회사를 운영하며 실수하거나 부족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인 적은 없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외부에서 저희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일을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있는 그대로 설명해 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왔다. 혹시라도 나중에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질문이 있다면 언제든지 답할 준비가 돼 있다. 지금까지는 말할 기회가 없어서 오해를 풀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컸고,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