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 개헌은 개문발차다

개헌의 최적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6월 3일 조기대선과 개헌을 동시투표하자는 국회의장의 발표를 이해할 수가 없다. 12·3 비상계엄의 내란과 4·4 헌법재판소 결정을 법적·정치적으로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이때, 굳이 같은 시기에 또 하나의 레일을 까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한민국이 갑자기 정차했었기에, 내릴 사람은 내리고 새로이 탈 사람은 타야 하는 숙명의 시간에, 느닷없이 개문발차하는 격이다.

대통령 윤석열 파면이 헌정유린·반란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라면, 개헌은 새 시대의 개막이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새 시대·새 정치·새 정부의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그날의 결단과 결정이 개헌의 동력이자 헌법개정권력이 되는 것이다. 국회의장의 개헌방법론은 국회주도형 개헌을 선호하고, 나아가 의장직을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회와 동일시하는 정치적 착시현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개헌을 위한 최고의 정치공간이다. 수명을 다한 현행헌법에 대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선택하는 국민 공론화 과정과 정치결단의 장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정당의 후보자라면, 예외 없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폐기를 선언할 것이고 이미 국민적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는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제시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개헌 시기 선택과 관련하여 구태로부터 벗어날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는 논의의 관행이 대통령·국회의원·지방선거와 겹쳐서 실시하자는 '선거비용알뜰제안'이 일관되게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다른 선거와 같이 국민투표를 할 경우, 막상 각 당의 이해득실 계산에 얽혀 단 한 번도 실현되지 못하였다. 38년째 묶여있는 현행헌법의 개정을 위하여 별개의 투표일을 잡는 것이 결코 정치비용의 낭비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동안 개헌실패는 국회의 여·야와 대통령 권력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간간이 정치적으로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협상용으로 개헌카드를 들었기 때문에 번번이 좌절되었다. 개헌의 주체는 국민이고 대통령과 국회는 절차상 제안자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듯이 개헌 또한 국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각성과 국민 스스로 자각이 있길 바란다.

제10차 헌법개정의 핵심사항은 국민 참여이다. 6·10 항쟁에 의해 탄생한 제9차 현행헌법이 최초로 여·야 합의에 따라 개정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국민 참여는 철저히 봉쇄되었다. 특히 개헌과정에서 5년 단임제 등 권력구조의 주요사항을 정치권의 협의와 합의의 범주 내로 한정하여 전문가적 검토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이 전혀 없었다. 이에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논의의 전담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국회의 인식은 잘못된 상황판단이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는 가칭 '국민참여개헌추진위원회'를 설치해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개헌추진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국민참여개헌추진위원회'의 방안을 정부의 개헌의견으로 확정해 국회의 개헌특위에서 수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헌의 사회적 합의는 '직접정치의 힘'에서 비롯되었기에 국민 참여는 개헌의 추진동력이며, 국회는 국민·정부 등의 다양한 의견수렴에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4·19 혁명, 6·10 항쟁, 촛불탄핵 등 한국헌법 역사 변혁의 주체인 국민의 정치참여 욕구를 제도화시킬 직접정치의 기제로서 국민소환·국민발안 도입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제10차 개헌은 제법 오래된 대한민국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중차대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대통령·국회·전문가·시민단체·언론 등 모두가 협업적 자세로 나서야 완성될 수 있다. 최적의 개헌 시기는 제21대 대통령 정부의 출범 초기다.


박상철 사단법인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전 국회입법조사처장 palma21@hanmail.net

박상철 사단법인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전 국회입법조사처장
박상철 사단법인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전 국회입법조사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