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이용했던 많은 국가가 이제 '제발 협상해달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표 후 7일(현지시간) 언급한 말이다. 그동안 미국을 이용했던 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협상해 공정한 계약을 하면 이에 따라 해당 국가들이 상당한 관세를 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를 놓고 협상은 할 수 있지만 이를 대폭 줄이거나 없던 일로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미국은 9일(현지시각)부터 상호관세를 부과한다.
국내 기업들은 사실상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소비자, 제조사, 부품 협력사가 모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美, 삼성·LG 최대 수출국

미국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주요 생산거점이 위치한 지역 매출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국가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주 지역 수출 규모가 내수의 약 3배에 달한다. LG전자는 지역별 매출 기준으로 한국을 제외하고 해외 매출 중 미주 비중이 가장 크다.
양사 모두 최근 3년 사이 지난해 미주 지역 실적이 가장 높다.
업계는 현실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미국·멕시코 공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 최적의 관세 리스크 대응책이 될 것으로 본다. 베트남, 인도 등 대안 거점 가능성이 제기돼온 지역에 고율 관세가 부과돼 뾰족한 대안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멕시코도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다. 미국과의 새로운 협상에 따라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이 있다.

멕시코는 지금까지 대미 수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지역으로 평가받았다. 멕시코 정부가 수출입 관세 면세 조항을 적용해 철강, 알루미늄 등 1239개 품목은 특정 기간 안에 국외로 반출할 경우에 한해 무관세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한국 가전·자동차 기업들이 멕시코로 한국·중국산 철강을 무관세로 들여온 후 완성품을 제조해 미국 등에 수출해왔다.
특히 미국-멕시코-캐나다 간 3국 자유무역협정(FTA)인 신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미국에 무관세로 제품을 팔 수 있는 것은 최대 장점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급격히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USMCA로 인해 중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가 멕시코를 막대한 우회 수출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25% 관세 부과 계획을 언급했다. 멕시코 정부는 지난해부터 수입 철강에 정상 관세 25%를 적용하고 있다.
USMCA가 내년 7월 개정을 앞두고 있어 멕시코도 더 이상 '관세 안전지대'가 아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은 USMCA 효과로 멕시코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지만 향후 일정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단 1%라도 가격을 낮출 방안을 찾는 게 숙제”라고 토로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무르투자 알리 책임연구원은 “자동차 수입에 25% 관세가 부과되고 자동차 부품에 대한 세금도 예정돼 있어 신차 가격이 8000달러에서 1만500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어 한국, 유럽,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 피해가 예상된다”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관세로 인한 일자리 창출보다는 제조사들이 수요 감소와 마진 축소에 적응해 오히려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끝 안보이는 관세 폭풍…기업은 '신중론'
가장 직관적인 해결책은 미국 내 공장 생산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뉴베리에 생활가전 공장을, LG전자는 클라스크빌에 TV 공장을 운영한다.
가동률 상승을 넘어 생산라인을 재배치해 품목을 확대하거나 유휴 용지를 활용해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실제로 삼성과 LG는 건조기나 오븐 등 기존 생산라인을 최소한의 개조로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원하는 현지 인프라 확대는 수천억원 규모의 대형 투자가 필요해 부담이 크다. 기간도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만큼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여겨진다.
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내 경쟁사 대부분이 수출국이라면 동일하게 불리한 조건이지만 미국 월풀과 중국에 인수된 GE가 미국 내 공장이 있어 미국 내 가격 경쟁력을 고려해야 한다”며 “가격 인상 전가분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이는 제조사와 부품사에게 모두 타격이 불가피해 출혈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업들은 가장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미국과 멕시코 공장의 생산 효율성 극대화 전략을 우선 살피고 있다.
동시에 협력사들과 단가 재협상, 부품 수급 효율화 등을 다방면으로 협의하고 있다. 폭등한 관세는 협력사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이전에는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의 생산거점을 대체제로 활용하는 방안도 일부 거론됐다. TV의 경우 베트남과 유럽 생산 물량을 확대해 미국에 우회 공급하는 방안도 점처졌다.
그러나 이는 물류비 부담과 낮은 효율성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주요 생산국에 상호관세까지 부과하면서 가능성은 더 희미해졌다. 미국 거점 신설만큼 가능성이 낮은 선택지가 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공식 취임 전부터 멕시코 25% 관세부과가 거론됐지만 불과 3개월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며 “당장 생산 전략에 변화를 기하기보다는 원가 경쟁력을 최대로 높이는 방안을 중심으로 대응하는 게 현실적인 돌파구”라고 설명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