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유산취득세, 공평하고 합리적인 과세로의 출발점

김범석 기재부 1차관
김범석 기재부 1차관

정부는 지난 3월, 2년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50년 상속세법 제정 이후 75년 만에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물려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체계에서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체계로의 전환이다. 과세방식·대상, 공제제도, 납세절차 등 상속세제 전반에 걸친 개편을 통해 보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상속세 제도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이번 개편은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이라는 상속세 과세방식의 근본적 변화로, 그 개념은 명료하다. 상속세 과세의 관점을 피상속인에서 상속인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유산세 체계가 불합리한 측면이 있음에도 오랜 기간 답습되어 온 것은 과거 우리 사회의 상속관습에 익숙한 과세방식이었고 과세행정이 용이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상속세법이 처음 도입된 1950년대에는 장남이 유산의 대부분을 상속받는 '장자상속'이 관행적으로 인정되었기에 피상속인의 전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에 논란이 크지 않았다. 또, 소득 파악이 충분치 않던 시기였기에 피상속인의 생애 동안 과세되지 않았던 소득을 사망 시점에 정산해 상속세로 과세한다는 취지에서 피상속인이 남긴 유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해 왔다. 과세당국 입장에서도 상속재산의 전체 규모만 파악되면 과세가 가능하고, 상속인 간 연대납세의무를 통해 효율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간 상속문화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있어 왔고, 과세행정 역량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발전해 왔다. 과거 몇 차례 민법을 개정해 장자 외 다른 자녀들로 상속권이 확대됐고, 1991년에 현재와 같이 모든 자녀에게 동등한 상속권이 보장된 이후 자녀 간 공평하게 상속재산을 물려받는 문화가 보편화됐다. 국세행정 측면에서도 축적된 전문 인력과 국세통합시스템(TIS), 소득-지출분석 시스템(PCI) 등 첨단 과세 인프라 구축을 통해 과세행정 역량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조세정책은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를 적기에 반영해야 한다. 상속세 역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유연하게 변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추진되는 유산취득세는 현행 유산세 체계에 비해 여러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상속세 과세방식 변화.[기재부 제공]
상속세 과세방식 변화.[기재부 제공]

우선, 보다 공평한 과세가 가능해진다. 현행 상속세 체계에서는 상속인이 물려받은 재산을 합산한 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1인당 상속재산이 같더라도 상속인 수가 많다면 높은 세율이 적용되고, 세금 부담도 늘어난다. 하지만 유산취득세 체계에서는 상속인 각자가 실제 받은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므로 상속인 수와 관계없이 물려받은 재산만큼 공평하게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는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상속재산의 합산과세에 따른 과도한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유산취득세가 상속인 특성을 반영하고 부의 분산을 유도할 수 있어 형평 측면에서 유산세 방식에 비해 바람직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음으로, 상속인 기준으로 상속공제를 적용해 상속인의 인적특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행 유산세 체계에서는 재산을 물려받는 자녀 중 장애인이 있는 경우 장애인 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으나 공제가 본인에게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상속인들이 그 공제 효과를 받게 된다. 반면, 유산취득세 체계에서는 장애인 공제가 본인의 상속세 계산 시 전부 적용되므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배우자공제 확대에 있어서도 유산취득세 방식이 보다 적합한 측면이 있다. 현행 방식은 배우자공제 한도가 확대될 경우 그 효과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다른 상속인의 세금계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유산취득세 하에서는 공제금액 확대 효과를 배우자가 모두 받게 되므로 배우자 생계 안정과 재산권 보전이라는 정책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속과 증여의 과세기준을 재산취득자 기준으로 일치시킴으로써 자산의 무상이전에 대한 과세방식이 보다 합리화될 수 있다. 현행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도 상속재산에 합산됨에 따라 상속인이 받지도 않은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부담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러한 이유로 공익목적으로 기부한 기부금이 상속인의 예상치 못한 큰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있어 왔다.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경우 상속인 각자가 받은 사전증여재산만 상속세 과세대상에 포함되므로 상속인이 받지도 않은 재산으로 인해 상속세 부담이 커지는 사례는 없어질 것이다.

이렇듯 유산취득세로 상속세가 개편되면, 피상속인이 남긴 상속재산에서 각 상속인들이 받는 유산을 기준으로 세금이 결정돼 상속세제의 과세형평이 개선되고, 과세관청 편의보다 납세자인 상속인 중심으로 과세행정의 틀이 근본적으로 개편될 것이다.

최근 정부 및 민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국민이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여주셨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청회에서도 유산취득세 도입 필요성에 폭넓은 공감대를 보였다. 사회적 공감대가 무르익고 있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전환을 위한 법 개정안을 곧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민들이 보여주신 많은 관심이 국회까지 이어져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

〈필자〉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정책·세제·금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다. 1970년 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행정고시 제37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기획재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조정국장과 차관보를 거쳐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냈다가 2024년 7월 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