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푸조의 소형 해치백 `208 1.6 e-HDi`를 타고 서울에서 강원도 주문진을 왕복하는 600㎞ 구간을 신나게 달렸다. 힘들고 불안할 것 같았던 겉모양과는 달리, 굳건한 의지가 돋보인 차다. 고속도로와 국도, 구불구불 산길에 시원한 해안도로까지 `208`은 날렵하게, 그리고 꽤나 안정적으로 헤쳐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 빠르게 달렸음에도 충분히 더 갈 수 있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주차를 마친 뒤 확인한 연료량은 3분의 1 이상이 남았다. 연비는 리터 당 약 18~19㎞ 사이였다.
서울을 출발해 경기도 여주까지는 고속도로에 차가 유난히 많았다. 주행 성능을 체험하기 보다는 차 안의 여러 기능을 활용하는 데 주력했다.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과 차를 연결하자 주소록과 음악파일이 싱크된다. 스티어링 휠에 붙은 컨트롤러로 조작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번에 시승한 208엔 수동형 자동변속기 `MCP`가 1.6리터 디젤 엔진과 맞물린다. 누군가 대신 변속을 해주는 느낌이다. 수동변속기와 구조가 거의 같기 때문에 실제 수동 변속을 하는 듯 운전을 해야 변속할 때 울컥거림이 없다. 변속될 때 발을 살짝 뗐다가 다시 부드럽게 밟으면 된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를 지나자 둔내IC 전까지는 비교적 한산하게 달릴 수 있었다. 연료효율이 갑자기 좋아졌다. 연비운전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탔지만, 순식간에 리터 당 20㎞를 넘어섰다. 저배기량 디젤엔진의 효율은 참으로 놀랍다.
둔내IC부터 안인해변까지는 국도를 이용했다. 좁고 구불구불하면서 경사까지 이어진 코스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와인딩 로드인 진고개에 접어들자 흥분감이 배가됐다. 23.5㎏·m의 토크는 충분했다. 약 1.1톤에 불과한 가벼운 차체를 힘차게 이끈다. 순발력은 가솔린보단 떨어지지만 나쁘지 않은 펀치력으로 순식간에 가속한다.
핸들링은 쫀득한 찹쌀떡 같은 맛이 있다. 차를 과격하게 몰아붙여도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다. 간결하고 경쾌하다. 폴크스바겐 폴로와 같은 독일차의 냉정함과는 다른 감성 핸들링이 특징이다. 푸조차 특유의 가벼운 움직임을 보인다. 고양이가 바닥을 움켜 쥐고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는 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몸을 단단히 잡아주는 버킷 시트도 안정적인 운전을 가능케 하는 요소다.
이런 움직임 뒤엔 디저이너와 엔지니어의 고심이 숨어있다. 스티어링 휠 크기가 일단 작다. 윗부분을 눌러서 전체 지름을 6㎝줄였다.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이리저리 막 핸들을 돌리기에도 좋은 크기다. 그리고 조금 두툼하다. 그립감도 좋다.
계기반도 잘 보인다. 헤드업클러스터라고 부른다. 운전대 위에 속도와 엔진 회전수를 확인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자리했다. 앞을 바라보는 각도 그대로 계기반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실내공간은 고루하지 않은 `혁신`이 묻어난다. 파노라마 루프 양 옆에는 무드등을 달아서 멋진 분위기를 내고, 센터페시어도 새롭다. 다루기 쉬운 위치다. 내비게이션도 잘 보인다. 풀 오토 에어컨은 그 아래에 있고, 조작이 쉽다. 또한 실내 곳곳은 글로시와 매트가 섞여 있다. 반짝거리는 피아노블랙 마감은 품질에 자신 없으면 사용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알루미늄은 무광 처리해 고급스러움을 살렸다.
폭스바겐 폴로가 출시되며 소형 해치백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푸조208은 폴로의 라이벌이다. 물론 변속기는 폴로가 7단 DSG가 들어간 탓에 6단 MCP가 장착된 208보다 조금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 도달 시간은 폴로가 0.3초 빠르다. 변속기 덕분이다. 그렇지만 208이 폭이 조금 더 넓고 힘도 조금 더 세다. 그리고 폴로보다 60㎏ 더 가벼워서 연비가 리터 당 0.5㎞정도 더 좋다. 그리고 폴로는 값이 싼 만큼 내비게이션, 풀오토 에어컨이 빠져있다. 두 차종은 여러모로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 개성을 충분히 살려 만든 탓에 회사의 철학이 충분히 담겼다는 점도 닮았다. 냉정한 폴로와 감성적인 208쯤 되겠다.
해변에서 잠시 쉰 다음 다시 서울로 향했다. 진고개를 넘어 진부IC에서부터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뻥 뚫린 탓에 고속 주행 안정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시속 150㎞쯤에서도 불안함이 없었다. 스티어링 휠은 묵직해지고, 차체는 흔들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속 코너링도 꽤나 깔끔했다. 의외였다. 고성능 가솔린 버전인 208 GTi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이유다. 짧은 시간, 먼 거리를 달리며 프랑스 특유의 재치와 낭만이 묻어있는 푸조 208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박찬규 RPM9 기자 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