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사업에서 결별하면서 한국과 대만 인쇄회로기판(PCB) 업계의 희비가 엇갈렸다.
국내 PCB 업계는 지난해 중순까지 세계 AP용 플립칩(FC) 칩스케일패키지(CSP)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애플 물량이 빠진 탓에 시장 점유율이 쪼그라들었다. 반면에 대만 PCB 업체들은 애플-TSMC 연대 효과에다 미디어텍이 AP 시장에서 약진하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PCB 업체들이 세계 FC CSP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세계 FC CSP 시장 점유율은 50%를 웃돌았다. 대만 기업의 점유율은 20% 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 들어 시장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애플이 AP에 이어 FC CSP 거래처까지 한국에서 대만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대만 킨서스는 지난해 FC CSP 시장에서 10% 후반대 점유율에 불과했지만, 올 2분기 20% 후반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TSMC를 등에 업고 FC CSP 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대만 기업들도 잇따른다. 유니마이크론은 지난해 말 애플 AP용 FC CSP 초도 생산에 돌입했고, 올해 설비 투자를 단행해 대량 생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미디어텍의 약진도 대만 PCB 산업 성장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미디어텍은 중저가 AP 시장에서 퀄컴을 몰아붙이며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2010년 싱글코어 AP 개발에 성공하면서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지난해는 듀얼코어와 쿼드코어 AP까지 개발하면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성장에 힘입어 미디어텍은 지난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고, 2분기 AP 매출 성장 목표를 30%로 잡았다. 미디어텍이 듀얼코어·쿼드코어 AP 생산 비중을 확대하면서 대만 내 FC CSP 생산량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FC CSP를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투자를 단행한 국내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LG이노텍·심텍·대덕전자 등 PCB 업체는 FC CSP 시장을 겨냥해 연구개발 및 투자에 집중했다. 삼성전기 등 선두 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스마트폰용 FC CSP에 집중하면서, 후발 업체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 AP 물량이 대만으로 빠지면서 국내 FC CSP 시장은 공급 과잉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AP를 중심으로 부품 공급망을 한국에서 대만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며 “애플 의존도가 높은 부품 업체에는 다소 부정적인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