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LED 조명 플리커(깜박임) 현상, 규제냐 산업진흥이냐

LED 플리커 현상, 규제냐 진흥이냐

[이슈분석]LED 조명 플리커(깜박임) 현상, 규제냐 산업진흥이냐

지난 1997년 12월 16일 일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갑자기 여러 명의 아이들이 실려왔다. 같은 시기 일본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약 750여명이 구토 증상을 호소했고 심한 경우에는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으로 사망한 아이도 2명이나 됐다.

당시 입원한 135명 아동들의 증상을 역추적하다가 원인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시간 인기 만화영화 `포켓몬스터`를 보고 있었다. 문제가 된 장면은 빨간색과 파란색 배경 화면이 번갈아가며 나타난 1~2초간이다. 번쩍 번쩍 섬광을 내뿜는 효과를 주기 위해 화면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환됐다.

지난 1991년에는 미국 미시간주의 한 아동이 닌텐도 프로그램으로 전자오락을 하다가 발작을 일으킨 사례가 있었다. 게임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호흡 곤란을 겪고 발작을 한 것이다. 아이의 부모는 제조업체인 닌텐도를 상대로 260만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다수의 소아과학회지 등에 깜박거리는 빛에 자극을 받거나 자극성이 강한 게임 등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생기는 광과민성발작(닌텐도증후군)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최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시장 개화와 더불어 광과민성발작에 대한 우려가 다시 한번 도마위에 올랐다. 조명이 일으키는 깜박거림(플리커현상) 때문이다.

◇플리커 현상

플리커현상은 교류(AC) 전류의 특성 때문에 생긴다. 교류 전류의 파형은 사인(sin) 주기를 나타내는데, 이 파형에 따라 전기가 켜졌다(온) 꺼졌다(오프)를 반복한다. 60Hz 주파수를 사용하는 국내에서는 1초당 60번 켜졌다 꺼진다. 조명을 밝히는데 AC 전원을 쓴다면 빛도 초당 60번 깜박인다.

플리커 현상은 눈으로 식별하기 쉽지 않다. 사람 눈은 초당 16프레임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당 24프레임을 사용하는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육안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플리커 현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어도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노스웨스트국립연구소(PNNL)는 지난 2012년 LED 조명의 플리커 현상이 간질성 발작에 동반되는 신경계 질환, 두통, 피곤함, 몽롱함, 눈의 피로, 시각 활동 감소, 산만함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의학계에서는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시력 저하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장시간 반복적으로 봐야 하는 자동차 후미등에 플리커 현상이 있으면 단순한 피로감뿐만 아니라 안전 사고 위험도 있다.

◇규제냐 산업 진흥이냐

플리커 현상은 기존 전통 조명에도 있었다. LED 조명에서 이슈가 된 이유는 시장 개화 초반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자는 요구에 따른 것이다. LED 조명의 수명이 길다는 것도 한 이유다. 일반적으로 플리커 현상을 콘덴서를 이용해 억제하는데, 콘덴서가 불량을 일으키거나 수명이 짧으면 LED 칩·패키지 수명 여부와 상관 없이 플리커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존 초크식·전해식 콘덴서는 대부분 수명이 2~3년에 불과해 5~10년을 목표로 설치하는 LED 조명에는 맞지 않는다. 이를 해결한 조명만 유통시키자는 것이 플리커 현상을 규제해야 한다는 측의 논리다. 조명 업계 관계자는 “불량·저가 콘덴서를 사용하거나 플리커 현상이 발생하는 조명을 원천 차단해야 국가 전반적으로 LED 산업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며 “전기용품안전인증(KS) 기준에 플리커 관련 항목을 삽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당장 LED 조명 시장이 열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규제부터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LED 조명이 어느 정도 보급되면서 자연스럽게 플리커리스(Flickerless) 조명 제조 업체가 가려지고, 소비자들이 선택하도록 유도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일단 산업 진흥을 하는 게 우선”이라며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차차 해결해가면 될 일”이라고 반박했다.

LED 조명 관련 이해단체들은 아예 플리커 현상에 대한 공론화 자체를 피한다. “소비자들에게 괜한 불신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된 만큼 국내에서도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플리커리스(Flickerless) 조명 구현, 어떻게?

플리커리스 조명 구현을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인 파이라이팅은 플리커가 생기지 않고 12만시간(하루 12시간씩 켜두면 25년)을 보장하는 형광등 대체형 LED 튜브를 내놨다. 이억기 파이라이팅 사장은 “기계식 콘덴서를 제작해 수명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직류(DC) 전원을 사용해 플리커가 아예 생기지 않게 만드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제일조명은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한 DC 전원을 LED 조명으로 바로 연결하는 조명을 개발 중이다. 파형이 일정한 DC 전류를 기구에 바로 가하면 AC·DC 변환이 필요 없고, 플리커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박건 제일조명 사장은 “태양광 시장이 커지면 LED 조명의 콘덴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외에도 전해 콘덴서를 없애고 구동칩 회로에 컨버팅 기능을 넣는 방법 등이 플리커 현상을 없애는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