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 할머니는 웃었다. 휴대폰 다단계를 해서 1년 만에 400만원을 날렸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누군가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 주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다단계 1년 만에 남은 건 빚과 허리병, 무너진 인간관계뿐이라고 했다. 나랏돈과 딸의 용돈을 더해 한 달 3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할머니는 “월 100만원을 벌게 해 주겠다”는 말에 넘어갔다. 그리고 다단계 업체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을 믿었다. 아직까지 독촉전화를 받는다는 대전의 조 할머니는 “나이 칠십에 월세 밀리는 신세가 됐다”며 또 웃었다.
정부는 휴대폰 다단계가 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법을 지키는 이상 더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휴대폰 다단계로 월 1만명 넘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통신사는 “옛날에는 훨씬 많았는데 별것도 아닌 1만명으로 왜 이러느냐”고 기자한테 푸념했다.
휴대폰 다단계 업체의 유혹은 아찔하다. 교육 책자를 보고 기자도 혹할 뻔했다. `빗물 새는 처가 별채`에서 살던 한 남자가 2년 동안 인내로 경주해 서울 잠실 고급아파트에서 3000cc 독일 수입차를 끌고 있다는 사진은 어떤 말보다 호소력이 짙었다.
하지만 내용은 지독히 어려웠다. 피라미드를 이루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도우면 저절로 부가 창출된다는 이론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혹시 유명 다단계 업체 대표 사업가가 매일 인터넷에 올린다는 동영상을 보면 좀 도움이 될 것인지.
오늘도 어디선가 대박의 꿈을 좇는 청년과 주부와 회사원과 노인이 휴대폰 다단계를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오랜 시도 끝에 다단계에 존재하는 `1% 법칙`을 깨달을지 모른다. 물론 상위 1%보다 하위 99%에 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될 터다.
하지만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조 할머니처럼 빚과 병과 부서진 인간관계만이 뒤에 남을 것이다. 시장을 감독하는 정부와 다단계를 지원하는 통신사에 묻고 싶다. “이것이 최선입니까?”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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