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 진출 다국적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법 감시망을 비껴가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국경을 초월한 문제라 해결이 쉽지 않으며, 다자간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있어 우리나라 경쟁력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보다 5세대(5G) 이동통신에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혁신성장'에 있어 공정위 역할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시장 새로운 유형 불공정 행위로 빅데이터 독점, 알고리즘 담합을 언급한 바 있다.
▲알고리즘은 시장의 빅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해 가격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지만 동시에 경쟁제한 폐해를 발생시킬 우려도 상당하다. 이에 대한 합리적 규율방안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중심으로 알고리즘 담합 규율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외국 경쟁당국 규율사례 등을 종합 검토해 기술혁신은 촉진하되, 그로 인한 부정적 효과는 차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규율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산업에서 정보 독점 등 공정경쟁 이슈도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나 OECD 등에서 다각적으로 검토·연구하고 있다. 공정위도 차세대 ICT 산업 분야 등에서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위해 국제 논의 동향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
-다국적 기업 가운데 규모가 큰데도 국내법을 비껴가고, 세금도 회피하는 사례가 있다.
▲어려운 문제다. ICT 산업에서 경영 모델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기업과 완전히 다르다. 다국적 기업 문제를 다루려면 결국 다자간 동시접근이 불가피해 보인다.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닌, 국제적 공동 노력을 통해 전 세계의 공정한 질서를 만드는 쪽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는 미국과 EU 간 갈등이 있을 때 곤란하다. 미국 기업이 ICT 산업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으니 미국 정부는 적극 나설 이유가 없다. 여기에 EU가 대항해 갈등이 생기면 해결이 안 된다.
이 때 제3 지역에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곳이 아시아고, 가장 발 빠른 나라가 한국이다보니 우리 움직임에 미국과 EU가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다. 작년 말 공정위가 퀄컴에 과징금을 부과했을 때 세계적 이슈가 됐다. 이런 사안은 우리의 이슈인 동시에 글로벌 이슈다.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내 기업만 통제하고, 다국적 기업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불균형이다. 어떤 형태로든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미래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공정위를 비롯해 선진국 경쟁당국이 지금까지 갖고 있는 개념, 규제로는 제대로 사안을 다루기 어렵다.
예컨대 구글의 검색 순위 조작, 앱 선탑재는 이미 전통적 불공정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리즘 담합, 빅데이터 독점, 플랫폼 네트워크 효과 등을 어떻게 규제해야 (신산업으로서) 다이내믹을 유지·강화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검토가 필요하고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세계 경쟁당국이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는 느낌이다. 고민을 거쳐 솔루션 찾을 때 되면 더 이상 교정이 불가능한 상태에 가 있지 않을까.
-최근 주시하는 새로운 ICT 불공정 행위 유형이 있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성장 산업 분야에서 기술표준이나 플랫폼을 선점한 사업자는 선점 효과, 네트워크 효과로 하부 시장 참여자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갖게 된다. 구체적인 사안을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표준기술 보유자, 독과점 플랫폼 사업자 등의 독과점 남용행위에 적극 대응할 생각이다.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많은 불공정 논란이 있다.
▲이동통신 시장은 서비스업종 가운데 독과점적 시장구조가 장기간 고착돼 있는 대표 분야다. 대기업 3사가 9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통신서비스, 요금 경쟁이 활발하지 못해 소비자 후생이 저해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통신 시장에 대한 시장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연구용역 결과 경쟁촉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도출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개선하겠다.
-이동통신 관련 4차 산업혁명이 많이 거론된다.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을 인간의 몸에 비유한 것을 인상 깊게 들은 바 있다. 인용하자면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게 사물인터넷(IoT),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망이 5G 이동통신, 전달된 정보를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빅데이터, 이를 통해 모델을 만들고 솔루션 찾는 게 인공지능(AI)이다.
이 가운데 한국이 강점을 갖는 영역은 5G 이동통신이라고 생각한다. 5G 이동통신을 통해 각종 산업 활동으로 확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거래 과정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공정위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 '혁신성장'과 관련 공정위는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혁신성장 기반을 확충하려는 노력은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국정과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기본 전제가 되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혁신성장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이 혁신에 기여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는 공정경제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 8일 발표한 '기술유용 근절 종합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대기업의 기술유용을 근절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 또 혁신시장에 대한 신규진입이나 사업자의 혁신적 영업방식 등을 제한하는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
-국정과제인 '을지로위원회' 설치 관련 입법 과제도 공정위 소관이다. 일정이 다소 늦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가장 당력을 집중했던 게 을지로위원회다. 애착이 굉장히 강할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을지로위원회가 여러 대통령 직속 위원회 중 하나일 수 있다. 물론 중요성은 높지만 이런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을지로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해 그 속에서 공정위가 적극적 역할은 한다는 것은 방향에서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여당 기대와 청와대 현실이 다른 위원회보다 간극이 크지 않나 싶다.
을지로위원회 위상과 역할, 작동방식 등에 여당과 청와대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나서서 조율할 수는 없다. 결정이 이뤄지면 공정위는 주어진 역할을 하겠다.
-앞으로 주요 계획은.
▲공정위원장 3년 임기 안에 개혁을 완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3년 동안 우리 사회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스타팅 포인트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공정위와 공정위원장 역할이 아니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김동연 부총리가 혁신성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정위가 뒷받침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김상조가 공정위원장이 됐으니 몰아치듯 하는 재벌개혁 방식을 예상했겠지만 내 역할이 꼭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If the fact change, I change the mind.”라는 케인즈의 말로 갈음할 수 있겠다. 세상이 바뀌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과거에 묶이면 안 된다. 공정위원장 역할에 재벌개혁 과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장질서의 기본을 만들고 싶다.
대담=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장, 정리=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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