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후 100일 동안 국민에게 공정위에 대한 '기대'와 '의구심'을 동시에 갖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성과를 과장하지도, 과오를 감추지도 않았다. 그간 수차례 강조했듯 자기반성을 통해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김 위원장은 '미래'를 수차례 강조했다. 기업의 '과거' 법 위반 적발·제재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는 의지다.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 향후 기업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재벌개혁을 몰아치기 식으로 서둘지 않겠다는 판단도, 새로 출범한 기업집단국이 과거 조사국과 다르다는 설명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특유의 달변으로 지난 100일 소회와 향후 계획을 풀어냈다. 집무실 한편에 김 위원장의 상징이 된 낡은 가방이 서류로 가득 채워진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100일을 맞았다. 성과와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취임 후 재벌개혁 문제, 갑을 문제 등에 개선방향을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다보니 어느새 100일이 지났다.
과거에는 많은 국민이 공정위를 잘 몰랐을 것이다. 알아도 재벌 때려잡는 경제검찰로 생각하는 정도... 지난 100일간 갑을 문제 해결에 나서며 공정위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 등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을 국민이 느끼게 만든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다.
한편으로는 공소시효가 임박한 고발, 공정위 노동조합 보도자료(내부 갑질), 가습기 살균제 문제 등이 최근 한 달 사이 일어났다. 국민은 공정위가 중요한 일 한다고 느끼면서도 저런 조직이 중요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가졌을 것이다.
-대학교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말해왔던 개혁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개혁이 어렵다는 것은 위원장이 된 후 새삼 느낀 게 아니다. 20년 동안 시민단체 운동을 했는데 그동안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았다. 다만 위원장이 된 후에는 현실에 가장 근접한 과제를 정확히 제시하고 성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개혁을 하려면) 외부 환경이 우호적이어야 하는데 현재 국내외 환경이 최악이다. 특히 입법 부문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 제약은 이미 체화됐다. 너무 욕심내지도 않고, 너무 낙관하지도 않다. 지극히 현실주의자다.
-삼성 개혁을 얘기하며 '기승전결' 단계를 얘기한 바 있는데.
▲현재 삼성은 '전' 단계에서 큰 장애요소 만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삼성을 사랑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 경제 미래를 생각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진국도 역사적으로 큰 기업이 만들어진 후 3세가 이어받는 시점에 많이 변화했다. 성숙 단계에 올라온 만큼 걸맞은 조직구조, 사업모델을 갖춰야 한다. 3세가 사회와 시장 존경을 받는 CEO로 자리매김 하는 게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최근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출범했다. 어떤 역할 하나.
▲(전신으로 평가되는) 조사국과 명칭이 달라진 데는 이유가 있다. 조사국이 조사만 집중했다면, 기업집단국은 새로운 미션이 있다. 기업은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하게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기업이 어떤 상태고 무엇을 애로로 느끼고 고민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접근하면 기업을 망가뜨릴 수 있다. 기업집단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업의 정확한 실태 파악이다.
이후 위법이 발견되면 제재하고 이런 과정에서 확인된 정보를 바탕으로 법·제도와 집행을 개선해야 한다. 이것을 연결하는 게 기업집단국 미션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재벌개혁'을 두고 순환출자, 금산분리만 떠올리는 수준을 벗어났으면 한다. 우리 소중한 자산인 기업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공정위가 대안을 내놨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여기에서 중심 조직이 기업집단국이다.
-지난 100일 동안 재벌개혁 부문 활약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입법수단을 통해 급하게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을 지양하다보니 그런 인상이 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 경험, 입법 여건 등을 볼 때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몰아치기 식으로 서둘러서는 안 된다.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이다.
재벌개혁을 위해 우선 현행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겠다.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며 관계부처와 유기적 협력도 강화하겠다. 소유구조 개선처럼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대응하겠다.
-45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일감 몰아주기' 조사는 진척이 어떤가.
▲일감몰아주기 조사는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다. 지난 3월부터 45개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실태자료를 제출받아 분석 중이다. 법 위반 혐의가 높은 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직권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기업도 법무법인을 동원해 시스템을 바꿔놓고 자료를 지우는 등 준비를 해 조사를 나가도 뭔가 건져오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실태조사 결과 법 위반 혐의 기업이 여럿 있었다. 이 가운데 혐의 중요성에 따라 순차적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금산분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금산분리는 일단 삼성이 문제다.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금융그룹통합감독시스템을 활용해 부당행위를 걸러낼 수 있다면 공정위가 굳이 딱딱한 사전규제로 접근할 이유는 없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관련 문제도 공정거래법보다 세법으로 푸는 게 낫다. 공익재단도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대신 재산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된다.
공정위가 바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른 수단으로 행위 규율을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구조적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을 예측 가능하게 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 관련 은산분리 문제는.
▲원칙과 관련 많은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ICT 기업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해 메기효과를 내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약 90개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됐지만,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은 10개도 안 된다. 그만큼 안정적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이 어렵다. 은산분리 완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고집스러운 생각도 문제다. 그러나 왜 규제를 빨리 안 풀어주나, 풀어주면 금융 산업에 빅뱅이 벌어질 텐데 생각하는 것도 역시 위험하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조금 더 천천히, 신중하게 접근해도 된다. 과잉기대는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대담=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장, 정리=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