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IBM, 왓슨 전회장 사망

미국 IBM을 세계최대 컴퓨터업체로 도약시켜 포천지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본가"로 평가를 받은 토마스 왓슨 2세가 심 장마비로 구랍 31일 미코 네티컷주 그리니치 병원에서 향년 79세로 사망했다.

IBM설립자인 부유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명문인 브라운대학을 1937년 졸업 하기까지 공부 보다는 비행기 조종이나 잡기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한 왓슨씨의 재능은 2차대전중 육군 항공대에서 조종사로 5년을 복무한후 IB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하면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찰스커크 IBM 영업 담당 부사장에게서 일을 배운 왓슨의 사업가로서의 통찰 력은 컴퓨터가 출현하지 않았던 당시에 이미 전자기술이 인구 센서스에서 기업의 재무제표나 시장조사 작업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계산을 자동화 시킬 것이란 것을 명확히 예견하고 있었다는 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의직관대로 전자기술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와 실리콘 칩으로 발달하면서 전기모터와 레버 그리고 펀치카드에 의존했던 전자 기계산업을 급속히 자동화시켜갔다. 왓슨은 52년 사장으로 승진 하면서 IBM의 주력 사업을 기존의펀치기계에서 컴퓨터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초창기컴퓨터 시장에서는 IBM만이 압도적인 승자는 아니었지만 왓슨 주도하 의 시기 적절한 신제품 출시 전략은 강력한 경쟁업체였던 레밍턴 랜드, RCA, 하니웰, 제너럴 일렉트릭사등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IBM을 업계 최강의 위치 로 올려 놓았다.

61년聖슨은 기업고객들을 모아놓고 최근 내놓은 신제품 컴퓨터가 개발 당시목표만큼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고 털어놓고 제품이 고객기업에게 약속한 성능의 70%밖에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에 가격을 30% 인하한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 오히려 참석한 고객기업에게 신뢰감을 심어 주어 그 컴퓨터는 예상외의 판매호조를 구가할 수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열열한핵무기 감축 지지자였던 그는 카터 정권시절인 79년부터 81년까지 주소련 미국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사망하기전까지 왓슨은 그리니치 외에도 콜로라도주베일과 버몬트주 스토우 메인주 노스 헤이븐등지에 저택을 갖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거주해왔다.

유가족으로는올해 52세인 미망인과 6명의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