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함께 기술개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정부다. 특히 미래의 사회를 지배할 기술들이 복합화.대형화추세로 급진전되면서 정부의 역할 또한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상품화라는눈앞의 매출에 얽매이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장래에 반드시 필요 한 기술개발에 선뜻 나설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정부의 몫은 기업이 손댈 수 없는 첨단 및 복합기술의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당연하다. 또 기업들의 기술개발에 대한 의욕을 북돋워주고 유도하는 것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일중의 하나다.
기술개발에있어서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그렇 지만 현재 우리의 기술개발정책은 이러한 당연한 역할을 수행치 못하고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꺽어버리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정보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정보화 촉진기본법의 제정은 그대표적인 예다.
지난해말정보화촉진 기본법이 경제장관회의에서 전격 통과되자 정보화 촉진 기본법의 제정을 갈망해왔던 많은 정보산업게 종사자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사회의정보화 추진과 정보산업육성을 위한 모법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통과된 법안의 내용이 극히 부실해 그동안 법제정을 위해 들였던 노력이 그야말로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간 원인으로 관련업계에서는 부처간 이기주의를 꼽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다.
상공부.체신부.과기처를비롯 경제기획원까지 관계된 이 법안의 제정을 둘러싸고 관계부처간 치열한 영역싸움이 전개돼 그야말로 용두 사미격의 법안이 마련됐으며 이로 인해 정보화를 위한 기금이 마련돼 정보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관련 업계의 꿈도 덩달아 사라져 버리게 된 것.
결국정보화 촉진기본법안은 내각이 바뀌면서 없었던 일로 흐지 부지돼 최근처음부터 작업을 새로 시작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정부가기업들의 기술개발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인 셈이다.
이같은부처이기주의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과기처는 기업들의 기술개발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국산 신기술인정제 도라는 것을 마련,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국산기술로 개발된 제품에 대한 시험평가를 거쳐 KT마크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얼마후 상공부 산하 공진청에서도 NT마크제도를 신설함으로써 똑같은목적으로 두개의 제도가 정부내에서 시행되고 있다.
상공부와과기처의 이같은 업무중복은 관련기업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을뿐 아니라 세를 불리기 위한 경쟁으로까지 비취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결과 모중소기업은 똑같은 제품을 과기처와 상공부에 시험평가를 의뢰,KT 와 NT마크를 동시에 획득하는 2관왕의 영예(?)를 확보하기도 해 관련업계의 부러움이 아닌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국책과제로 선정돼 범부처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2백56MD램 개발 사업 도 이같은 과정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다.
비록범부처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져 지금은 개발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되고있지만 출발당시에는 가장 많은 기금을 출연키로 했던 체신부가 독자적인 사업에 대한 우선 투자를 내세워 기금출연을 거부함으로써 한때 사업이 중단될 위기까지 내몰렸던 것.
이사업이 범부처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지만 체신부의 이같은 돌연한 행동 은 사업 자체가 과기처주관으로 추진되는데 따른 불편한 심기에서 비롯 되지않았느냐는 시각이 존재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처이기주의로 인해 기업들의 기술개발의욕이 저하되고 업무의 비효율성을가져오고 있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기술개발의 효과를 극대화해야만 하는 정책목표와는 상관없이 업무의 중복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상공부가추진하고 있는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과 과기처가 벌이고 있는 특정 연구 개발사업도 부처간 업무중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것중의 하나다. 공업기반기술개발과제로 신청해 탈락할 경우 특정연구과제로 신청해 정부 지원자금을 확보하고 반대로 과기처에서 자금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상공부에 서 자금을 타내는 것이 업계에서는 하나의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지난해부터 과기처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간핵심 기술사업도 출발당 시부터 지금까지 상공부와의 업무중복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또 올들어 상공부가 산업기술과를 산업기술국으로 확대한다는 소식이 전해 지면서 과기 처의 업무영역까지 넘보지 않겠느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과기처일부에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부처이기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처간 업무중복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관계자들은 기술개발정책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고부처간 협조를 구하는 공식적인 채널이 없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현재기술개발에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부 조직은 과기처를 비롯 상공부.체신부.국방부.환경처 등 전경제부처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한부처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타부처의 협조를 구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범부처적으로 추진하는 사안에 관해서만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사전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유일한 협조통로인 경제장관회의에서 각 부처장관들이 자기 부처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당초 협조 및 조정이라는 목적과는 상관 없이 자기 부처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결국어떠한 커다란 목표아래 각 부처의 기술개발계획이 유기적으로 수립 되고 이를 집행하는 총체적인 기술개발체제가 구축되지 않음으로써 각 부처간 업무중복 및 업무영역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자금을 출연해 추진되고 있는 각종 연구개발사업에 관한 데이터 베이스가 아직까지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것은 국내기술개발정책이 얼마나 주먹 구 구식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구체적인 증거다.
과기처는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특정연구개발사업에 관한 데이터 베이스 를 구축하는 사업을 올해 사업계획에 포함시켜 놓고 있을 정도이며 타부처는아직도 과거에 어떤 사업이 추진됐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또 새로운 사업를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관계공무원들의 전문성이 결여된 것도 기술개발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세우지못하고 부처간 업무중복을 가져오는 하나의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특히 절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중소 기업들이 공들여 만든 계획이 공무원들 의 이해부족으로 정부의 자금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해 사장되고 있으며 기업 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과는 상관 없는 정책들이 수립돼 관련기업들의 참여를 종용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경우 투자 규모가 크고 이에 반해 위험성도 크기 때문에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확고한 신념이 없이는 사업추진 자체가 어렵 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관계공무원들의 전문성확보는 기술 개발정책을 수립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정부차원의기술개발프로젝트를 추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공무원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 마련 됐다 하더라도 해당공무원이 이해를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프로젝트가 추진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공무원 스스로가 맡고 있는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다가오는 기술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과기처 한 고위공직자의 이야기다.
이와함께 수시로 단행되는 공무원들의 보직변경은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심 화시키는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무원들의이동주기가 평균 1년입니다. 아무 것도 모른 사람이 와서 정책 을 수립하는 것 자체도 우스운 일이지만 1년동안 공들여 업무를 알만할 때면 또다시 정기이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대정부업무를맡고 있는 기업관계자들은 본연의 일보다는 새로온 공무원들에 게 상황을 알려주고 교육시키는 것이 업무의 전부가 되고 있다고 실토한다.
실무를맡고 있는 과장급 공무원들을 관련 기업에서 위촉받아 업무를 수행케 하는 일본과는 커다란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 일관성없는 기술개발정책, 부처간 이기주의 여기에 관계공무원들의 전문성부족이 더해져 우리나라 기술개발정책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기술개발의 효율 성을 극대화해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부터 먼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설득력있게 들리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술개발에투자할만한 재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한탄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전부처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앞으로를 대비하고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개발, 시행 하는 것이 기술경쟁시대에 정부가 맡아야 할 몫인 것이다.<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