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기획시리즈 <기술개발만이 살길이다> 부품.소재분야

지난해 10월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인 S사가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휴대 형 전화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총무게가1백99g밖에 되지 않는 이 제품은 외산제품의 유명세에 밀려 국내업체들이 발을 붙이지 못했던 휴대형 전화기시장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이 회사는 당시 공언했다.

그러나S사의 이같은 의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부품업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새로운 세트의 국산화는 늘상 새로운 부품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조차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품에 사용된 국산부품은 과연 몇가지나 되는가" S사측은 부품국산화율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부품 업체 국내 대리점의 한 관계자는 품목수를 기준으로 할 때 국산화율은 약 15~20%정 도라고 분석했다.

물론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국산화율은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최근 국내 전자 업체들이 잇따라 개발에 성공, 상품화하고 있는 최첨단 전자 제품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 정도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HDTV.캠코더.VCR. 이동통신기기 등 고성능이면서 소형화가 필수적인 이른바 첨단전자제품들은 그 성격상 초소형화된 칩부품과 품질신뢰성이 검증된 각종기능부품을 대거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직 국산화가 미흡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부품국산화율의 저조는 많은 문제점을 파생하고 있다.

전자산업의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것이다. 첨단전자제품의 경우 국산조달이 불가능한 부품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들여올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것은현실적으로 엔고상태가 지속될수록 채산성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내업체들이막대한 개발비용과 마키팅비용을 감당해 내면서 결국 외국 부품업체들의 배만 불려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부품국산화의 중요성은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나 학계. 기업체 모두에게서 누누이 강조돼왔다. 정부에서도 다각적인 정책을 입안해 부품 국산화의의지를 다져왔다.

전자산업의경쟁력 강화라는 대명제는 이를 지탱하고 있는 부품.소재 산업의 강화 없이는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부품개발이 대부분 세트의 변화에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앞으로는 부품 기술의 혁신이 세트발전을 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부품개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정부차원에서 진행돼온 부품국산화 정책은 갈수록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어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고 있다.

최근산업 연구원이 전자공업협동조합의 용역을 받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6년 이후 92년까지 "기계류 부품.소재국산화계획"에 따른 전기.전자분야의 국산화 성공률은 37.5%로 전체평균 51%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입 대체 및 수출 확대 효과가 최근에 이를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분석됐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체계적 이지 못한 지원정책과 거의 푼돈에 불과한지원금액 92년의 경우 건당평균 지원 금융이 9천2백만원에 그침)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또세트업체들의 국산부품채용 의지부족이나 부품업체들 스스로의 안이한 개발자세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앞으로의 부품국산화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는 문제로 최근들어 집중 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지적재산권의 문제다.

선진국들이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사거나 배워오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 지고있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 부품.소재분야에서 지적재산권문제로 시비를 걸어오는 외국기업들은 늘어만 가는 실정이다.

사실부품개발업체들도 그 부품의 각 부분을 이루는 부품 또는 재료들이 국 산화돼 있지 않아 껍데기에 불과한 "국산부품"을 "조립"할 수밖에 없는 사례 가 많다.

그럴경우 외산부품을 사용한 국산 세트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국산부품의 경쟁력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힘들게 된다. 최근 들어 부품은 물론 부품을 지탱 할 소재 또는 재료부문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국내영구자석업계의 최대 현안은 희토류자석 국산화문제다.

캠코더.VCR.초소형카세트.무선호출기등 첨단기능을 내장한 최근의 전자제품 개발동향을 보면 작으면서도 정밀한 작동을 요구하는 소형정밀모터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소형정밀모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작으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지는새로운 자성 재료의 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희토류자석개발은 영구자석업계의 최대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실제로 국내 업체들의 개발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토류자석중에서도가장 탁월 하다는 네오디뮴계 희토류자석의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GM과 일본의 스미토모가 한국업체들의 생산을 용납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조금 사정이 낫다는 희토류 본드자석(GM특허)의 경우 GM의 라이 선스가 있는 파우더를 도입해 생산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파우더 도입가격 이 완제품 수입가격보다도 턱없이 비싸기 때문에 자석업체들은 희토류자석사 업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이것은 소형정밀모터의 경쟁력이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아 세트업체들이 외산 모터를 도입하게 하고 이것은 다시 세트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는악순환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같은이유로 이제 일반전자부품분야에서는 국산화 성공사례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 드물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이처럼 척박해지고 있는 기술개발환경하에서도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입지를 확보,어깨를 겨루고 있는 국내기업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 또한사실이다. 이들은 부품 또는 재료를 수입, 단순 조립하는 일반적인 사업형태에서 벗어나 기초소재부터 원천기술확보에 오랜 시간동안 매달려온 기업들이 대부분이어서 소재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최근미국의 공룡기업 GE와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한판승부를 벌여 이목을 집중시킨 일진그룹이 그 한 예이다.

일진그룹의사업품목을 보면 대부분 기초소재부터의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는한 불가능한 제품들이 대다수다.

다국적기업인GE를 휘청거리게 만든 공업용 다이아몬드 외에도 PCB용 전해동박 과전압방지 회로부품인 산화아연계 배리스터등은 금속.세라믹.고분자 등기초소재분야의 탄탄한 기술력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일진이이같은 성공을 이루게 된 것은 무엇보다 오랜 기간동안 끈기있게 기술개발노력을 집중해왔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중소기업으로서는기술개발부문에의 집중적인 투자와 함께 한 분야로의 전문 화.특화전략 또한 중요하다.

국내금속분말시장에서 수입 대체의 선봉장 노릇을 해온 (주)창성이 그 대표 적인 사례다.

금속분말산업은 산업전반에 걸쳐 폭넓은 수요를 확보하고 있는 기초 소재의 하나로 분말야금기술의 발전과 소결부품수요의 증대로 매년 15%이상씩 성장 하고 있는 분야다.

전자산업에서도냉장고.에어컨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과 OA기기.통신 기기 등에 구석구석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나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세계의 몇개 기업이 분할 점령해 왔었다.

그러나창성은 83년 오일리스 베어링에 사용되는 혼합청동 분말 개발을 필두 로 지금까지 비철금속분말분야에 연구개발에 전념해왔다.

창성이지금까지 개발한 제품은 청동분말을 비롯해 알루미늄분말.마그네슘합 금분말.은분말.극미세코발트분말.황동분말 등 비철금속분말분야에 집중돼 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현재 구리(동)분말의 경우에서는 SCM등 외국업체를 몰아내고 국내시장의 70%내외를 점유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 냈다.

기초소재부터부품까지의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판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성공 사례로 거론되는 기업들도 과도한 초기투자에 따른 도산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가운데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시장개방에 따른 수입품과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소재 또는 재료부문의 개발 필요성은 더욱 절실 해지고 있다.

국내최대의종합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삼성전기도 이같은 상황을 인식, 앞으로는 기초소재부터의 완전한 국산화에 연구개발자원을 집중시킬 계획 이라고밝히고 있다.

삼성전기는이같은 전략아래 지난해 MLCC(적층칩세라믹컨덴서) 의 재료인 세 라믹분말을 국산화, MLCC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바탕을 마련 했으며 올해는 HIC 혼성집적회로 와 칩저항기의 기본재료인 알루미나기판을 국산화할 계획이 다. 원자재 공급물량조절, 전략적인 가격인하조치 등 일본 업체들의 견제가 갈수 록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내 부품산업계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방법외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