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보사회를 앞두고 우루과이라운드(UR), 기술라운드(TR), 그린라운드 GR 등과 함께 수없이 반복되는 선진화, 세계화, 국제화, 세계정상, G-7진입 , 세계최고, 세계초일류, 세계최초등의 말들은 우리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도전과 희망의 느낌도 있지만 염려와 두려움도 따르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이러한 말들은 별로 쓰이지 않았다. 전후의 잿더미를 딛고 절대빈곤을 벗어나야 하는 허덕임속에서 이러한 말들은 머나먼 나라의 꿈과 같은 이야기들이었으며 우리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후진국에 서 중진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그러나이제 조금은 잘 살게 되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부족한 것이 없어보인다. 넘치는 자동차.전화.컴퓨터의 물결, 백화점마다 시장마다 꽉꽉 들어찬상품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진열장, 증가일로의 개인소득 등을 바라보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동구.아시아.아프리카 등 국가들에 대한 상대적 느낌도 우리가 선진이라는 착각을 갖게 한다. 반도체 생산국 1~2위, 전화보급률을 세계 7~8위, 컴퓨터 보급률을 세계 제몇위, 전자교환기와 광통신의 국산화 성공, TV와 VCR제품의 대량 해외수출 등도 우리를 선진대열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해준다. 2000년대 G-7권 진입, 초고속 정보통신망등의 목표의식도 우리를 선진화 대열에 들어간 탄탄대로에 놓인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선진을 향한 우리의 문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교육문제를 해결 하면 된다든가, 선진인력을 개발하면 된다든가, 경영을 합리화시키면 된다든가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출하면 된다든가, 도덕.윤리를 포함한 의식 개혁을 하면 된다든가 하는 말들이다. 이제는 이대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인가 잘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문제를 풀어보려면 엄청난 벽에 부딪치는 것이다. 선진을 위한 준비가 매우 미약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물질적 풍요와 기술경제 성장일변도로 달려오는동안 참다운 선진도약의 요소들을 키워오지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과학기술수준이 낮다든가, 산업.경쟁력기반이 약하다든가 하는 말로도 표현되지만 더욱 심각 하게는 인간 성과 환경의 파괴, 사고의 경직, 기초지식과 학문의 부재, 가치관의 혼돈,선 진의식결여등의 말로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오늘까지 우리는 과학기술을 포함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들은 선진적 입장에서 창의성있게 풀어왔다기보다는 모방에 의해 풀어왔다는 것이 옳다. 문제의 정의로부터 시작해서 방법론과 해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정들도 서구 에서 개발된 사상과 학문을 수입하거나 모방해서 풀어오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내신비율을 높인다든가, 대학자율화를 모색한다든가 하는 것도그러한 이유다. 경영과 관리를 위해서 X-이론, Y-이론, Z-이론이 아닌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선진을 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진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선진의 속성 때문이다. 선진의 특성은 모방의 완전성에 있지 않고 창조에 있다. 모방과 창조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후진과 선진의 차이는 바로 모방과 창조의 차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후진은뒤따라가는 것이며 선진은 앞서가는 것이다. 후진은 선진을 모방하면 되지만 선진은 앞에 모방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개척과 창의만이 있을뿐이다. 따라서 선진은 수많은 창의적인 탐색과 실험과 시행착오속에서 스스로의 궤도를 잡아나가야 한다. 타율과 의존보다는 자율과 독립성으로 앞서가는 것이선진인 것이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진은 선진의식 과 "선진의지" 그리고 "선진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21세기선진정보화사회를 위해서는 바로 이 시점부터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과 산업경제의 지표가 발전한다고 해서 선진국은 될 수 없다.
우리보다앞선 일본이 "모방"을 벗어나 "창의"를 제창하고 나서는 이유를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의 서양"이라고 일컫는 일본이 경제와 기술 의 대국은 되었으나 아무도 그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며 스스로도 선진국이 아님을 자처하고 있는 것을 한번 음미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고와 의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한다. 바로 이러한 전환이 곧 선진 화의 키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