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IBM의 연구개발을 통한 회생 전략

회생전략을 짜내기에 여념이 없던 미IBM이 마침내 자사의 왓슨연구소를 구심 점으로 하는 전략체계화에 나섰다.

지난해3월 취임하여 IBM부활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던 루이스 거스너 회장은 왓슨연구소가 그 선도적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 중책을 맡겼다. IBM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장.단기적으로 기술력 강화가 필수적이고 IBM연구소만이 이를 감당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90년대들어서면서 IBM하면 "중병" "저무는" "몰락" 등의 수식어들이 연상될 정도로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93년 거의 절정에 이르렀고 최근의 사업구조재편도 마찬가지지만 경영의 여러가지 회생 움직임은회생이 불가능한 중환자의 최후의 몸짓으로 치부되었다.

계속되는적자속에서 컴퓨터분야 문외한인 RJR 나비스코사의 거스너 회장을 회장으로 영입했을 때 일부 관계자들은 식품.담배회사 최고경영자가 컴퓨터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이런시각은 IBM산하 왓슨연구소에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던 물리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자 그런 시각은 더욱 고정되었다.

한마디로IBM은 빈사상태에 빠졌고 연구소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거스너회장은지난해 5억5천만달러였던 연구소의 예산을 올해 5억달러로 삭감했다. 이 삭감규모는 그러나 1백30억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92~93년 의 이듬해치고는 다른 부문에 비해 훨씬 적은 것으로 거스너가 연구.개발 사업에 얼마나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는가 하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거스너회장이 연구소를 신뢰하는 만큼 연구원들도 회장을 믿고 따르고 있다. 그 이유는 제임스 맥그로디 연구소장을 비롯한 연구소 직원들이 밝히고 있듯이 여러가지이다.

취임하자마자공식적인 일정중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왓슨연구소 방문이었다는 사실을 제쳐두고라도 무엇보다도 거스너는 예산을 핑계로 한 감원을 연구부문에서 만큼은 거의 하지 않았다. 2천6백여명의 연구원들이 미국의 새너제이 스위스 취리히 등에 그대로 남아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스너회장은또 연구원들에게 회사임원으로의 진출을 위한 문턱을 낮췄다.

그는연구원들도 회사 고문에 앉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일례로 하드웨어 개발사업에 참여했다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사람도 있었다.

거스너회장이아직 완성되지 않은 랩톱컴퓨터 "립 프로그"의 시제품을 가지고 정기총회 기자회견에 나섰을 때 연구원들은 그의 배려와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원들도 거스너회장이 IBM의 미래를 자신들의 어깨에 올려 놓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거스너회장은IBM이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회피해온 회사대 회사가 아닌 연구 자들의 필요에 따라 다른 회사와의 협력도 장려했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메 모리 칩분야에서는 지멘스.도시바와, 칩소재분야에서는 애널로그 디바이시즈사와 데이터단말기 분야에서는 세이코 텔리커뮤니케이션 시스팀즈사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IBM연구소의이러한 움직임은 연구소 안팎으로 몇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그동안 가지고 있던 국가적.세계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순전히 IBM만의 이익을 위한 연구소라는 것을 업계에 인식시키게 되었다.

또한연구소는 이제까지의 기초 물리학부문에서 탈피하여 IBM내에서 그 필요 성이 점증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부문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로말미암아 카오스이론과 프랙탈이론의 선구자인 베노이트 맨델브로트 등 물리학부문연구자들이 이직하거나 명예퇴직하기도 했지만 연구소가 하드웨어 가 아니라 시장성있는 소프트웨어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은IBM만의 미래를 고려할 때 그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아무튼 IBM은 더이상 갤륨-비소 칩 소재나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위한 바이폴러 트랜지스터, 값 비싼 열전도 모듈 등이 업계의 중심사가 아니라고본 것이다.

전통적으로영업을 중시해온 IBM이 거스너회장의 동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예산의 절반가량을 연구부문에 투입하는 것을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조치로 보고 있다. 나머지 예산은 대개 우선순위에 따라 배정되지만 당장의 회사영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양자 색역학 등에도 투입되고 있다.

IBM의초병렬처리 수퍼컴퓨터가 바로 이런 무관한 듯이 보이는 연구에서 탄생했다. IBM관계자들은 메인프레임사업이 타격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 전통 적 메인프레임개념을 벗어난 초병렬처리 수퍼컴퓨터의 개발을 줄기차게 반대 해왔다. 그러나 연구소는 이 수퍼컴의 개발을 찬성하는 입장이었다.메인프레임관계자 들이 강력하게 고개를 저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스너는 연구소의 관점에 따라 이 계획을 추진토록했다.

이는앞으로 진부하기조차한 "IBM에 활력을"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사업이 뭔지 모르는 샌님같은 과학자들에게도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차원과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IBM연구소에서 명백한 것은 3년간 계속된 예산삭감과 이에 따른 고 위층의 사기저하밖에 없다. 지난해 자신들의 연구현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연구원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연구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아침 7시에 근무를 시작해 저녁 10시를 넘기기 일쑤인데다 회사의 회생 이라는 대명제가 연구원들의 머리를 짓누르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부담은 IBM연구소 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적 발명보다는 비용절감 효과에 더 치중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M과 그 경영자의 신뢰를 받고 있는 연구소는 현재 기업 의 회생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연구소를 "소프트웨어 목장"으로 꾸며준 거스너 회장의 판단의 옳고 그름을 알게되는 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걸릴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