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컴퓨터 산업을 형성시키고 이끌어 오던 한국전자 통신연구소(ETRI) 컴퓨터연구단이 고속 병렬 컴퓨터 개발이라는 주전산기 Ⅳ사업을 6개월 동안이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금년 상반기에 발생했다.
원인은원천기술이나 연구해야 할 대학이 기술도입에 의해 대형 컴퓨터를 생산하겠다는 데에서 발생된 것이다. 이 것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우선 컴퓨터 개발 추세가 대형에서 중소형컴퓨터 위주로 변하고 있다. 즉, 중소형 컴퓨터들의 성능이 대형 컴퓨터의 성능을 능가하고 있고, 컴퓨터 통신의 발달로 인한 다운사이징 추세로 대형컴퓨터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형컴퓨터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종래 방식의 컴퓨터 개발을 포기하고 그 기술을 한국에 이관해 주려 하고 있다.
기술이없는 사람이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도입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우리는 이미 개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대형 컴퓨터보다 더 성능이 좋은 고속 병렬 컴퓨터를 개발하려는 집단이 있는데, 여기에 힘을 집중 시키지 않고 오히려 분산시키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는 기술도입에 의해서 중형이나 대형 컴퓨터를 생산해 본 적이 많다. 실례를 들면, 중형급은 SEQOIA사로부터, 대형은 히타치나 하니웰로부터 기술도입을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국가 기술 발전에 기여한 바는 별로 없다. 왜냐하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차기에는 독자적인 자기 모델을 설계해 보겠다는 의지없이 기술을 도입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생산기술만 일부 확보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기술 제공자가 제품을 바꾸면 우리는 또다시 기술도입을 해야 한다. 즉, 만년 하청 사업자가 되거나, 두세 번 반복하다가 슬그머니 그만두어버리게 된다. 그런 일이 이번에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근에도 한국컴퓨터는 탠덤사의 최신제품인 히말라야를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려 하고 있다. 가만 두었어도 기업체가 잘 했을 일인데 기술 도입에 의한 생산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느라고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것 같다.
기술도입의경우 계약이 성사되고 난 후부터 계약내용에 따라 기술이전을 완수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컴퓨터 개발이란 고도의 전문가 집단이 하는 것이고, 아마추어들이 하는 일이 아니며, 그리고 기술도입에 의한 생산도 어렵다. 이런 일에 경험도 없고 수행조직도 없는 학교가 앞장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그런 일이라면 기업체에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요즘도 기술 도입에 의한 제품 생산은 회사에서 많이 수행하고 있고, 2년 이면 제품이 바뀌는데 도입선을 정하느라고 수년씩 걸려서도 안되겠다.
따라서수천만달러나 들여서 수백대에 이르는 판매 보장까지 해주어야 하는기술도입에 의한 대형 컴퓨터 개발은 기업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수행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어떻든4년이면 끝을 볼 수 있는 사업이다. 기술도입에 의한 대형 컴퓨터 개발 방식이 기술이 부족해 국제적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국내 기업의 성장을 돕는 일인지, 기술 제품으로서 국내외 시장에서 얼마나 팔리게 될 것인지, 계속해서 기술도입계약을 해야하지 않을지, 혹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인지 그 일이 대학교의 연구 풍토에 바람직한 일이었는지 지켜보게 된다.
고속병렬 컴퓨터는 20GIPS에 해당하는 기계이므로 지금 기술도입을 해서 생산하겠다는 대형 컴퓨터보다도 성능면에서 우수하며, 신?성도 초기 개발단 계에 있는 외국기종보다 국산 컴퓨터가 더 높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고속 병렬컴퓨터 개발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다 자체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표준화된 것과 이미 개발된 기술중에서 경쟁력이 있는 외국기술은 분야별로 도입하며, 국내 협동연구와 국제 공동연구도 활발히 추진할 것이다.
단지우리 설계에 의해서 움직이며, 기술 종속을 피하기 위해 턴키 방식으로 한 회사로부터 모든 기술을 전부 도입하지는 않을 뿐이다. 선진국의 컴퓨터 회사들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한 회사가 다 자체 개발하지는 않는다.
우리도신뢰성.시장성.경쟁력을 감안해 문호를 개방, 타 회사의 기술을 부분적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나면 슈퍼급 초고속 병렬 컴퓨터를 2000년까지 개발 완료 할 예정이다. 따라서 대학에서 추진하는 대형컴퓨터 개발사업과 연구 내용및 추진방식에서 좋은 비교가 될 것이다. 주전산기 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에게는 좋은 경쟁자가 생긴 셈이다. 주전산기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 은 여러 곳으로부터 지능적이고 지루한 견제가 있겠지만, 철저한 장인정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국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외제와 컴퓨터 개발이 라는 기술전쟁에 적극 대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