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일본가전-2-공동화 위기

"채산이 맞지 않는 것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차세 대의 상품을 만들어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막아야 한다." 일본 가전업계가 안고 있는 고민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1달러1백엔대가 무너지면서 1달러 두자릿수시대의 도래를 현실로 받아들일수밖에 없게 된 일본경제. 대표적인 수출 산업인 가전의 해외생산 가속화는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국내에서의 회복조짐이 일부품목에서 나타나고는 있지만 수출은 엔고로 고전하고 있다. "매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확대할 수밖에 없다 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해외생산의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소니사의하시모토 사장도 "금후 생산을 늘릴 경우 거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확대할것"이라고 밝혔다. 95년 3월마감 회계연도 해외 매출액중 해외 생산의 점유율은 계획상 소니가 45%(전회계연도 36%), 마쓰시타 전기산업이 39%( " 38%), 일본빅터가 50%(" 45%)등이다. 전체매출액에서 차지 하는 해외 생산비율도 파이어니어 42%(전회계연도 31%), 켄우드 44%(" 38%)등으로 거의 모든 업체들의 해외생산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중 대부분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고 있다.

이같은해외이전으로 "가전왕국 일본"을 떠받쳐온 하부 구조는 고통을 받고있다. 일본의 가전은 선풍기.세탁기.라디오.TV.VCR 등 화려한 히트상품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흐르는 "좋은 제품을 보다 싸게,대 량으로 공급한다"는 정신을 지탱해 온 것은 사실상 많은 부품업체나 하청 업체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최근 절정을 이루고 있는 대형 제조업체들의 "일본탈출"로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는지난달 중순 AV기기사업부가 직접 관장하는 토카이전자 공업 등 4개 자회사를 합병하기 시작했다. 히타치의 가전부문은 VCR의 국내생산등 에 발목을 잡혀 94년 3월결산에서 4백55억엔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기록 했다. 이번 회계연도에도 적자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합병을 통한 경량화는 히타치에는 불가피한 생존전략이지만 이 때문에 지방 하청업체가 받는 타격은 막대하다. 일례로 한 하청업체는 최고시에 월 3억엔 이었던 수주액이 그 10분의 1이하로 급락했다. 가전업체로부터 버림받기 시작한 하청업체는 이제 정보기기등 다른 업계로부터의 수주로 활로를 모색 하는 길밖에 없다.

산요전기가40% 출자하고 있는 플라스틱정밀금형의 야마다몰드 인터 내셔널 은 대폭적인 수주감소로 지난해 4월에 도산, 오사카지방재판소에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나 금년 2월에 결국 파산했다. "오사카.효고현 후쿠자키공장을 폐쇄 , 군마공장에 생산을 집약한다"는 계획이 모회사의 지나친 해외 이전으로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가전의하청업체들로 가득찬 군마현에서 냉장고나 에어컨의 수지부품등을 생산하고 있는 니시바공업은 가전부품의 국내생산을 일부 포기하고 쇼핑카드등 업무용 기기로 비중을 옮기고 있다. 한 관계자는 "AV기기 분야에서부터 시작된 공동화의 물결이 에어컨.냉장고로도 미치고 있다. 대량 생산형의 제품만 을 상대하고 있으면 멀지않아 일감이 떨어질 것"이라며 이유를 설명한다.

에어컨용 컴프레서부품의 기계가공을 실시하는 하야가와정밀은 대중 수출의 호조로 매일 2시간의 초과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하야가와사장은 이상태로 수출용 제품의 발주가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시한부일 뿐"이 라며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전업계에서유일하게 호조를 보이는 업체는 소니계열의 아이와다. 해외 생산비율이 지난해 77.5%였으며 올해는 80%를 넘어설 전망이다. 신규 사업인 정보기기를 빼고 나면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일본에서의 제조 를 사실상 포기한 아이와는 엔고극복의 모범케이스로 평가되지만 이것이 가전업계 전체의 해결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공동화를 심화시킬 뿐이기때문이다. "국내에서 만드는 기술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다.

."VCR를 잇는 대형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일본 가전업계에 이런 공동화시대가 지금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