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경쟁과 규제

얼마전 일간 신문에 IMD(국제경영개발연구소)와 세계경제포럼이 공동 수행한 세계 경쟁역에 관한 보고서가 소개된 일이 있다. 개발 도상국과 OECD 국가를 합한 41개국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은 총 8개 평가부문중 정부. 금융 .국제화등 3개 부문에서 최하위급 순위로 평가받았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정부 규제가 얼마나 심하고 제도와 인지이 얼마나 굳어져 있는가를 대변해 주는 것으로서, 당시 일반 국민에게는 충격적인 뉴스가 되었다.

"경쟁은붙이고 규제는 풀라." 우리는 이렇게 기본 방향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원칙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그러나 이를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할 때에는 여간 조심스러운 분별역과 균형 잡힌 동찰역 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경쟁을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고, 규제를 완화해야 할 것과 안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먼저 경쟁과 규제의 목표가 무엇이고, 그 대상이 무엇 인가 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경쟁과 규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복지 향상" 이라고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제 현실로 보아 경쟁의 대상은 결국 다른 나라들이 되고, 규제 또는 규제완화의 대상은 국내의 기업활동이 되겠다. 정부는 이러한 국제경쟁과 국내 기업활동을 주선하고 지원 하는 사령탑이 되어야 하고 국내경쟁은 국제 경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건강한 것이 되어야 하겠다.

국내경쟁과국제경쟁은 얼핏 보기에는 같은 경쟁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크게다른데 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국내 경쟁에서는 "체급별 경기 가 가능하나 국제경쟁은 헤비급 선수가 플라이급 선수를 무차별 공격할 수 있는 "무체급 녹다운 게임"인 것이다.

이러한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첫째, 모든 기업활동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규제완화를 꾀하되 "체급별"경쟁.문화적 공감대 유지. 국제경 쟁 누수 방지 등의 최소한의 규제는 유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는 부처 간의 업무가 경쟁관계보다는 상호 보완관계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코치 들간의 업무 다툼은 자칫하면 팀을 약화시키고 국제 경기를 패전으로 이끌게된다. 셋째, 공기업들은 그 사업성을 살펴 민영화해갈 것이로되 공기업들간 의 소모적인 경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한편 사안에 따라서는 국제경쟁을 위해 "국가대표선수"를 정책적으로 키우는 것도 고려해야 하겠다.

이와같은 원칙을 염두에 두고 정보통신에 관련된 몇 가지 현안들을 살펴 보도록 하자.

첫째,정보.통신 및 방송 관련 정부부처업무는 반드시 일원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보통신부"와 관련해 이미 수년간 거론되어온 일이나 아직도 실현 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정부부문"의 문제다. 시대에 맞지 않는 옛 제도를 개혁않고 임기응변이나 땜질식으로 대처하면 부처간의 과잉경쟁과 각종 부조 리를 낳게 된다. 국제경쟁의 사령탑이 불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 한, 이 분야의 국제경쟁력이 갖춰질 리 만무하고 도리어 관련 산업계와 학계의 활동마저 도 왜곡시키게 된다. 이와 관련해 요즈음 학계에 나타나는 통신정책학회. 방 송공학회 등의 난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개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둘째,공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는 시대상황에 맞게 완화되어야 한다. 정부는 일사불란한 운영을 도모하기 위해 사업 성격이 다른 모든 정부투자 기관들에 한 가지 법을 적용해 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산업분야마다 발전 속도가 달라 왔고 기업활동의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따라서 어떤 공기업은 존폐 의 문제가 거론되는가 하면 어떤 공기업은 국내외 경쟁 속에서 기업 활동을 하게 된 오늘의 상황에 처해서는 기존의 정부투자기관법은 많은 모순을 내포 하게 되었고, 또 공기업의 활동을 장애하는 과잉규제가 되고 있다. 매출액 1조가 넘는 회사에서 "종업원 한 명 늘리고 자동차 한 대 사는 데에" 정부허가가 필요하고, 동일업종의 사기업은 좋은 봉급과 처우로서 우수한 종업원들 을 스카우트해 갈 판인데도 임금 인상폭을 3%로 묶어 놓는 식의 규제는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셋째, 최근 거론되고 있는 정보통신분야의 사업자 구조 조정에 있어서 특히 균형 잡힌 분별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모든 공기업의 활동 방향을 국민편익 증진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두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한국 전력과 같이 다른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이 자가통신설비를 사용해 통신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처하는 것은 공기업 설립의 기본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는 마치 원활한 교통소통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사고가 날 우려가 없으면 빨강 신호등에도 건너가도 좋다" 는 식으로 조처해 결국은 교통 무법의 수라장을 유발하게 되는 것과 같은 무분별한 일이다. 차라리 교통량 에 따라서 가변시간제를 적용할지언정 빨강. 파랑 신호등의 기본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일단 국가가 각 분야별로 공기업을 설립해서 금을 그어주었으면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구획을 재설정하거나 공기업을 사기업으로 전환시킬 것이거니와, 아직 공기업으로 남아 있는 한은 그 구획을 꼭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