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트브잡스의 야망(1)

미국 첨단산업의 주역을 꼽으라면 스티브 잡스를 빼놓을 수 없다. 애플 컴퓨 터사를 세워 매킨토시 PC를 처음 개발해 컴퓨터업계의 신화적 존재가 된 스 티브 잡스는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일구어 왔다. 잡스 는 85년 애플사를 떠나 넥스트 컴퓨터사를 설립해 이제 또 하나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사업의 성패와 더불어 나타나는 그의 이상과 불굴의 투지는 많은이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지는 캐나다 맥스웰 맥밀란사가 최근 출판한 "스티브 잡스와 넥스트사의 장래(Steve Jobs and the Ne.t Big Thing) 랜덜스트로스 저)"를 입수, 매주 3회(월, 수, 금요일)독점 연재한다.<편집자 주> 처음에 거기에는 제록스가 있었다.

컴퓨터의전문가들이 총집결되어 훗날 명성을 날리게 될 기관이 1970년 설립 되었다. 증권분석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설에서 제록스사의 피터 매컬러 회장은 자신도 정확히 모르면서 "정보시대"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강연했다 . 그는 정보통신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지식폭발"에 대처하겠다는 의욕을 밝히면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부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내가 말한 개념을 구현할 수 있는 연구소를 세우시오." 이처럼 제록스사의 팔로 알토 연구소는 정보통신기술과 미래사무실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연구소는 약자인 PARC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이름은 인근 스탠퍼드 대학이 조성한 녹음이 우거진 공원내에 위치한 사실에비추어 "공원(Park)"과 발음이 같은 것이 흥미롭다. PARC는 마치 대학 캠퍼 스의 종합과학관처럼 보였다.

본부건물은 매우 인상적인 현대적 감각을 지니고 있고 뒤에는 농구코트도 있었다. 연구원들은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퇴근했 는데 어떤 이들은 티셔츠를 입기도 하고 또 "의문권위자"(Question Authori ty)라는 배지를 달고 다니는 연구원도 있었다. 출퇴근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했다. 그러나 PARC는 마치 여름방학에 들어간 학부생이 없는 대학캠퍼스처럼 텅빈듯이 조용했다. AT&T가 지역벨사로 분할되기 전 한때 직원수가 2만5천명에 달했던 벨연구소와 비교해볼 때 PARC는 너무나도 작은 규모의 연구 소였다. 70년대 PARC의 직원수는 2백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나오는계보처럼 개인용 컴퓨터 분야에서 이룩한 모든 중요한 발전을 추적해 올라가보면 근원은 오직 하나임을 알 수 있다.

PARC가 연구개발사업에 착수했을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개인적으로 사용하는제품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기계는 빠르고 사람은 느리다"라는 관념에 젖어있어서 기계 한대를 가지고 여러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했다. 60년대에는 이같은 정도의 기술발전도 대단한 일이었다. 컴퓨터 한대를 한사람이 사용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컴퓨터 한대를 나눠 쓴다는 것은 비능률적이었다.

컴퓨터를 동시에 연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컴퓨터가 어느 한 사람의 명령에 반응하는 속도는 그만큼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가령 컴퓨터는 A라는 사람에게 천분의 몇초 동안 서브하다가, B라는 사람에게 옮겨가고, 이어 C에게 옮겨가는 식으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 사용자들 을 모두 한번씩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A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사람들은 컴퓨터가 마치 기어다니는 것처럼 느려졌다는 인상을 받게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도 사용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요인이 되었다. 컴퓨터가 받아들이게끔 명령을 하려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언어에 통달해야만 했으며 그 명령은 자판을 두드려야만 전달될 수 있었다.

사용자가 화면상으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은 타자기에 있는 글자와 숫자만 표시해주면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화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네모로 나누어졌고 각 네모안에는 글자나 숫자가 한개씩 자리를 차지하게끔 했다. 이런 시스템은 타자를 쳐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릴 경우에는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으나 그림이나 그래프를 표시할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텍스트를 띄울 때에도 문제가 있었다. 글자 크기나 글자체를 달리하는 것이불가능했던 것이다. 네모칸은 글자의 크기를 제한했고 특정글자나 숫자를 나타내라는 명령을 받을 때마다 반복해야 했다.

예를 들어 "G"자를 치면 소프트웨어는 오로지 같은 크기의 한가지 글자체만 을 화면에 띄웠던 것이다.

PARC의 연구진들은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그들은 "개개인 컴퓨터"를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줄 방도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대의 중앙컴퓨터를 공유케 하는 대신 개인을 위한 기계를 고안하고 또 개발해냈던 것이다. 한대 의 컴퓨터를 공유하는데서 오는 번거로움과 지체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컴퓨터개발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밤이 되면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반면 PARC컴퓨터과학연구실은 융통성없는 글자와 숫자로 표시하는 고정된 칸에서 해방되어 화면을 무한하게 다양한 마크로 뒤덮을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