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밀수는 너무 흔해서 새삼 거론할 거리도 못된다. 문제는 밀수품이 오랫동안 버젓이 유통되고 있으며 전자상가는 물론 백화점에서 까지 공개적 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의 외산 선호풍조가 여전하며 유통 업체들의 의식이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보도에 따르면 관세청이 올들어 8월말까지 단속한 캠코더.CDP등 7개 가전제품의 밀수액만도 96억4천3백만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동기 적발물량에 비해 무려 3배에 달하는 것이다.
전자부품의 경우는 더 심하다. 그중 컴퓨터 핵심부품인 CPU밀수는 올들어 적발된 건수만도 87건에 4만9천2백여개(1백50억원 상당)가 압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적발되는 밀수제품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내 CPU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인텔사가 판매하는 물량은 월평균 3천~4천개에 불과한데 용산 전자상가등에서 판매되는 CPU중 월 2만~2만5천개가 밀수품이라는 전자상가 부품상들의 말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올들어 적발된 밀수품중 특이한 것은 지금까지 운반상 어려움으로 밀수품에 끼지 않던 냉장고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물론 적발수량은 미미하다. 하지만 냉장고의 크기가 대형 컬러TV 3대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밀수가 종전과 달리 대형화되고 대담해졌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형식승인 대상품목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허위로 관련서류를 조작해 통관하는 위장수입이 늘어난 것은 관세청의 통관이 단순 히 서류심사에 그치고 있다는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장 개방화정책에다 UR타결로 사실상 모든 물품의 수입이 가능해 관세청도 많아진 수입 물동량을 낱낱이 검사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전자관련 전문가들이 태부족인 상태에서 물품검사가 수박 겉핥기 식일 수 밖에 없다. 특별한 정보 없이는 이를 적발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세계 어느나라든 밀수는 있다. 항상 필요악의 성격을 띠면서도 시장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밀수된 전자부품의 경우 값이 싸기 때문에 이를사용한 세트제품은 제조원가가 낮아지는 이점이 있다. 가전제품의 경우도 일부 소비자들의 과시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밀수 제품의 기능이 일정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CPU시장의 경우 수요의 80%이상을 밀수제품에 의존하고 있고 가전제품도 15%정도를 잠식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는 세수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시장 안정성 측면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더이상 방치하다가는 우리 전자산업이 회생불능의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될지도 모른다.
고질화된 전자제품 밀수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밀수근절방안은정부만이 아닌 업계를 비롯해 국민 개개인이 실행할 수 있는현실적인 대안이 있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밀수가 횡행하는 원인으로 상혼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원론적인 얘기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 그것이 발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시스템이 왜 아직도 구축되지 못하느냐를 따져야 한다. 한마디로 밀수제품을 유통시키고 도 별탈없는 유통구조가 문제다. 아울러 밀수품 유통을 사전사후에 막아야할국가의 공권력이 체제를 제대로 못갖춰 무력하거나 해이해진 것이 주된 원인이다. 또 소비자들의 각성이 아직 불충분한 것도 한가지 원인이다.
밀수 제어방안으로 전자부품의 경우 관세인하, 가전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의 각성이 곧잘 제기된다. 관세인하가 전자부품 밀수 근절책으로 설득력을 갖는것은 관세가 국내 산업보호를 위한 보호관세라기보다 세수증대를 위한 재정 관세라는데 있다. CPU에 부과되는 현행 8%의 관세를 3%로 인하할 경우 밀수물량이 현재보다 30~40%이상 격감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정부는 깊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가전제품 소비자들도 국산제품이 품질이나 성능면에서 외산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미 밀수품을 구입한 소비자들도 구입처를 덮어둘것이 아니라 애프터서비스 강화를 강하게 요구, 제대로 서비스가 이뤄지지않을 경우 그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밀수제품 취급을 소비자의 힘으로 배척할 경우 이들 유통업자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 유통업계는 가격파괴라는 새 유통풍조를 조성해가고 있다. 좋은 상품을 값싸게 공급하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밀수제품이 늘어나고 있는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