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매킨토시의 대학가 판매성공은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즉 매킨토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PC, 대학서점을 통한 판매체계 그리고 매킨토시만 고집하는 충직한 고객의 확보 등이다.
애플사는 중간단계인 대리점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량의 제품을 값싸게보급할 수 있었고 컴퓨터 대금은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부담하기 때문에 대학은 별다른 예산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매킨토시 의 성공사례는 이차적인 관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매킨토시의 마케팅 담당 자들과 대학을 놀라게한 것은 매킨토시가 학생들의 학문활동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애플사의 스테이시 브레슬러가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보면 성공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매킨토시가 공개되기도 전에대학 캠퍼스에서 진을 치고 애플-대학 컨소시엄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던 브 레슬러는 매킨토시가 캠퍼스에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놀라워했다. 그는 폭증하는 수요에 대비하고 여러 대학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주일에 1백시간이나 일했다. 할일이 너무 많고 재미 있어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매킨토시 판매 담당자들에게 있어서 매킨토시가 출하된 이후 처음 몇년이 가장 신나는 해였다. 대학에서 매년 들어오는 수입이 처음에 수천만 달러였던 것이 후에 수억달러로 증가해 90년초에 들어서 8억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에 달했지만 그들은 초창기를 잊지 못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에 타성이 붙게되었고 개척 정신도 무뎌졌다. 매킨토시가 캠퍼스에 널리 보급되자 사용자들이 가졌던 특권의식도 점차 사라졌다. 캠퍼스 밖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적어도 대학가에서 매킨토시는 매출면에서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캠퍼스에 매킨토시를 보급하는 일에 참여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평생 그 후광을 입게 되었다. 르윈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세운 공로로 애플사 에서 확고한 자리를 확보했다.
매킨토시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그것을 받아들여 위험을 무릅쓴 드렉셀 대학 의 브라이언 호킨스는 명철한 투시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게되었다. 이를부러워한 많은 사람들이 제2의 매킨토시가 나오게 되면 르윈이나 호킨스와 같은 영웅이 될 것을 꿈꾸기도 했다.
대학이 초창기에 매킨토시를 수용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여러가지 면에서 혜택을 받게 되었다. 대학은 그 컴퓨터가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기도 전에구매계약을 맺었고 기존의 IBM제품을 제치고 새로운 컴퓨터를 지원했던 것이다. 더구나 대학은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앞으로 몇년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킨토시를 지원한 것이다. 대학은 융통성이 있고 새로운 기술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형성 했다. 매킨토시가 발표되고 3년이 채 되기도 전인 87년 초에 백만번째 매킨토시가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