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유럽의 잠재력

1989년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4년이 지났다. 그동안 동유럽 사회의 혼돈상은 신문지상에 자주 눈에 띄었으나 그곳의 경제전망, 그들의 공업잠재력에 대한 것은 별로 기사화된 것이 없었다. 마치 동유럽은 경제적으로 서방국가에는 영원히 미치지 못할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유럽 각국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중국의 고도성장 못지않게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의 경제상황은 큰 변화를 나타내고있다. 헝가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서부의 쥴(Gyor)의 거리는 마치 오스트리아에 온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한다. 거리를 질주하는 많은 차들은 오스트리아의 번호 판을 달고 있으며 상점의 간판들도 독일어가 많이 눈에 띈다. 쥴의 공업은 현재 라바 (Raba)가 선도하고 있다. 이 공장은 공산체제 하에서는 국영기업 체로서 한때 13만5천명의 시민 중 2만5천명을 고용했으나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1991~1992년에는 3천5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여 재건이 불가피했다. 지금은 미국의 디트로이트 디젤과의 합작으로 7천명을 고용하고 매상의 58%는 미국의 다나, 이튼에 공급하는 액셀과 록크웰에 공급하는 샤프트가 차지하고있으며 93년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서독의 아우디(Audi)가 이곳에2억달러를 투자하여 완전 자동화된 신예 엔진공장을 건설하여 2백명을 고용 하고 있으며, 앞으로 3억달러를 더 투자하여 90년대 말에는 완성차를조립할계획이라 한다.

쥴에는 수개의 연구소와 공과대학이 있어 많은 고급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고급인력의 급료는 서독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 곳은 빈으로부터 불과 1백15km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의사와 치과의사들은 서방측에 고객을 많이 가지고 있어 경제는 활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경제면에서 체코의 경제는 헝가리보다 훨씬 양호한 편이다. 1945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보다 높았으며, 공업수준은 독일, 프랑스, 영국 에 필적할만 했다. 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독립한 후 인구가 불과 1천30만 명의 체코는 동유럽국가 중에서도 우량아에 속한다. 94년까지 80%의 기업이 민영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파산한 기업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의 기업이 모두 건실하다. 실업률은 3.2%로서 서유럽 어느나라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물가도 안정되어 있다. 정치역시 안정되고 정부재정이나 무역도 균형을 유지하여 EU가입을 위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조건에도 알맞아 수년내 EU의 일원이 될때 서유럽국가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구소련의 경우에는 전인구 의 8.5%에 해당하는 2천만명이라는 방대한 숫자의 과학자가 첨단무기 개발 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이 시장경제를 알고 대량생산기술을 익힐때 강력한 공업국가로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들 국가의 강점이란 이것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공예품 기술과 뛰어난 관광자원이 많으며 러시아만 하더라도 무진장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배우고 정치적으로 안정만 된다면 풍부한 자원, 고급이면서도 값싼 노동력으로 경제는 다시 소생하고 고도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다.

제2차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일본에 진주했을 때 GHQ의 정상들은 일본과 같은취약한 경제력으로 미국과 어떻게 4년동안 싸울 수 있었는지 수수께끼라 했다. 당시 일본의 여건은 지금의 동유럽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 일본은 20년도 되지 않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자원이 전혀 없었음에도 고급인력과 양질의 노동력만으로 경제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현재 동유럽 여러나라의 여건을 한번 비교해 볼만도 하다.

중국은 정치적인 안정으로 93년 13.9%, 94년에는 12~13%(추정)의 경제성장 을 지속하고 있다. 동유럽권의 성장이 이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동유럽국가에대하여 외교적인 유대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업잠재력과 이에따른 경제력 향상이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검토하여 이들과 협력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세계가 미국시장에만 의존하고 있으나 이제는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해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아야 할 것같다. 그것이 세계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