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급한 북한투자는 금물

북핵문제이후 미국의 대북경제제재조치의 완화를 계기로 우리나라 전자업체 들의 대북투자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금수 조치(엠바고)가 풀리지 않아 안달이 났던 미국.일본 전자업체들까지 최근 대 북경제제재조치가 완화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행 특급"에 동승하려는 움직임이다. 북한을 다녀온 한 그룹의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91년에 라진.선봉지역개발계획을 발표한후 일본을 비롯 미국등 선진국의 전자업체들이 진출의사 를 밝혀왔으며, 지금 한국기업의 대북접촉 창구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고려민 족산업발전협회에 한국측 전자업체들의 방북신청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의 경쟁적 대북투자심리를 유발하기 위한 의도적인 측면을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를 비롯 서방선진국의 "마지막 남은 시장 으로 불려지는 북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듯하다. 실제 신년벽두 처음으로 강진구회장을 포함, 10명의 실무진을 북한에 파견한 삼성그룹은 방북단이 돌아오자말자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 전자단지를 건설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으며 뒤이어 대북투자가능성을 조사하고 돌아온 대우그룹의 이경훈 부회장도 비슷한 내용의 대북투자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다 한화그룹은 통신장비생산을 북한 측과의 중요한 의제로 다룬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 방북허가서를 받아 놓고 있는 LG그룹은 가전제품과 부품 생산공장 건설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이같은 움직임이 바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자분야의 대북투자를 어느 정도고대하고 있는지 반증해 주는 증거이다. 아직은 전자분야 대북투자가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투자조사차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북한관계자들 은 사업내용을 남쪽 언론에 발표하지 않고 일을 추진한다면 약속사항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시장개방분위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우리의 경험을 접목한 다면 결과는 큰 성과로 나타날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북한투자에는 상호간 풀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 상호협력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되어 있지 않고 투자보장협정, 2중과세방지협정등 법적.제도적장치도 전무한 형편이다. 도로 항만통신등 사회간접자본은 우리의 60년대 수준으로 상당히 낙후된 실정이어서 투자환경이 생각보다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첫 북한 진출 기업"이라는 명목상의 이미지만 노려 즉흥적인 투자에 나설 경우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 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북한에 진출하고 보자는 성급함이 앞선다면 대북 투자계획을 그르칠 수 있다.

이같은 전자업체들의 행태는 해당기업들만의 피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자업체 전반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흐리게 할 소지가 많다. 북한의 개방조치에 편승한 우리 전자업체들의 성급한 투자는 오히려 북한에게 끌려 다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투자여건이 완전히 개선될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적극적인 외자유치에 따른 외국업체들의 진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금수조치가 부분해제 된 것을 계기로 북한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은 한층 뜨거워 지고 있다. AT&T를 비롯한 통신 업체를 시작으로 GE등 미국전자업체들이 리서치연구기관을 통해 투자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행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외국 전자업체들 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국업체들의 움직임은 우리입장에서는 신시장에의 경쟁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출에 앞서 철저한 투자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북진출은투자 그자체도 중요하지만 진출이후의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 가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지의 상황변화를 살피면서 단계적이고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북투자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금수조치의 완전해제와 더불어 서방선진국의 전자업체들 이 투자를 본격화할 때 기선을 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지금부터 세워놓아야 한다 북한의 시장구조와 특성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일도 시급하다. 북한을 단순히 저임금의 후진국쯤으로 보고 접근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 지 않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북한투자를 결정해야 할 것이며 어떤 분야에서는 업체간의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투자적격지로 부상한 북한에 무턱대고 국내사간에 경쟁적으로 나섬으로써 결과적으로 업체나 국가가 손해를 자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