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국가기간 전산망 사업을 추진하던 87년 당시 많은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도 일을 잘 처리하고 있는데 왜 전산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혹자는 "공연히 일만 복잡하게 만들고 번거롭게 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추진하는 고위 공무원, 정치가, 국회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정보화에 대해 설명한 적도 있다. 그분들 거의 모두가 중요한 사업이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그분들 자신조차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정보화에 대한 국가사업은 언제나 그분들에 의해서 우선순위가 낮추어진다. 그리고 그분들은 언제나 바쁘다. 회의를 하고 보고를받고 지시를 하며 방문객을 만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생각 을 추스려 새로운 정책, 새로운 대안을 구상할 여유가 없다.
91년 1차 행정망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을 때였다. 문제가 많다는 포항 송도의 어느 동사무소에 들른 적이 있다. 삼십대 중반의 젊은 아낙이 컴퓨터를 쓰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자 자료를 입력하느라고 1년가 량 매일 야근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하기 전보다 훨씬 빨리 퇴근할 수 있게 되어 이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콧마루가 찡했다.
정보화의 목표는 반드시 삶의 질의 향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하겠다. 예를 들면 용어를 수정하고 문서의 형태를 고치거나, 일상적인 보고를 받기 위해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분명 생활을 박탈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생산적인 요소를 철폐시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여유와 여가의 마련이 요구된다. 국가 사회의 정보화는 바로 이러한 요구를 실현시켜줄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최근에 정보화에 관련된 많은 계획들이 민간부문, 공공부문에서 수립중이거나 발표되고 있다. 비록 그 목적이 정보화라고 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과 정보이용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는 계획들이 많다. 그들 내용을 일별해 보면 인텔리전트 빌딩, 비즈니스 타운 건설, 텔레포트 건설 등 고도기술을 이용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설을 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시설을 하고난 후 이용방법을 구체화하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많은시행착오를 유발시켜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화상회의를 한다고 가정하자. 토의할 주제에 대한 각종 자료를 동시에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토의가 시작되어 이견이 있으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제시되어 함께 보며 토의할 수 있어야 한다. 회의가 종결되면 결론이 요약되어 서로 확인해야 하고 의결이 되어 시행에 옮길 수 있도록 서명 혹은 확인하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함께 앉아 회의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이 화상회의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료의 DB화, 절차의 전산화 등이 고려되지 않으면 결국 화상회의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전화에 불과할 것이다. 현재 화상회의 시스템을 설치해 두고 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으나정말 투자한 만큼 효과가 있는 곳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설비가 곧 정보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화는 생활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계획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설비가 가구가 아닌 보조자로서의 역할,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서의 전자화, 업무처리의 전자화, 자료의 DB화, 사람의 도구활용능력배양, 전자화된 제도로의 사고의 전환 등이 함께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안된다.
정보화는 이용자 중심이어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한 대의 개인용 컴퓨터를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이용하고 민원서비스, 금융서비스, 의료서비스, 개인적인 우편서비스 등도 함께 받을 수 있기를 원할 것이다. 또 사용방법도 한번만 배우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되기를 원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이 국민을 위해 서비스하는 관점에서 국민의 비즈니스 활동, 여가활동 가족관계에 의한 유대, 교육, 건강 등으로 분류하고 정부의 부처중심 이나 정부, 민간의 구분계획에서 벗어나 서비스 중심으로 계획되어져야만 할것이다. 끝으로 국가경쟁력을 갖춘다는 측면에서 정보화는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 해야 한다. 민간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발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정부의 정보화가 병목현상을 야기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해야한다. 규제의 완화, 철폐 등도 중요하지만 그이후 정보화가 조속히 추진되지 아니하면 민간이 닦은 8차선 도로가 정부가 마련한 2차선 도로 때문에 혼잡과 지체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전산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