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일간지에 "기술에 기적은 없다"는 경제과학부장의 논단이 게재된 일이 있다.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경제발전을 "환상"이라고 격하하고 그 이유 를 선진국들과의 기술격차가 줄어든 근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폴 크루그만 교수(스탠포드대)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선진기술을 때로는 훔칠 수도 있지만 최종승부는 자기기술이 결정짓는다"라고 전제하고 조기 기술 교육의 필요성을 역열한 논단이었다. 이 논단에 공감하면서 어떻게하면 우리나라의 현실여건 속에서 고급 기술이 배태가능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할 수있을까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난 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공과대학에는 줄곧 우수한 인력 들이 유입되어 왔고, 여기서 배출된 공학기술인들은 30여년간 국가 경제발전 에 큰 몫을 해냈다. 이렇듯 공과대학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배고픔을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가능성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먹고 사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수인력들이 사회적으로 더 인기 있는 분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수인력들이 변호사직으로 몰리는 미국의 현 사회현상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구미의 기술선진국들에서는 어디서나 "엔지니어"를 존중하고 그 기여도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조선조 오백년을 통해굳어져 버린 기술 경시의 사회인습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공학기술인에 대한 사회인식이 대단히 낮은 편이다. 같은 전문직이면서도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에 비해 "엔지니어"는 턱없이 낮게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우수 인력이 기술 인력으로 유입되기 어렵다.
농업사회를 공업사회로 완전 변모시킨 지난 30여년의 사회 변화 속에서도 이렇듯 공학기술인에 대한 사회인식이 낮은 것은, 민족 특성이나 과거 인습이 외에 여러가지 사회적인 구조, 제도, 교육등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정치력에 의해서 일들이 처리되는 성숙치 못한 사회구조가 그 중 하나이다. 천여명의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일해서 정보통신 기술 혁신을 이룬 것보다 정치를 잘해서 전화요금을 올리도록 하는 편이 훨씬 더 수익성이 높은 사회구조에서라면, 우수 인력이 어느쪽으로 기울 것인가 하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술관련 주요정책이나 업무가 기술에 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제도 또한 문제이다. 또 기술이 생활교육으로 이어지지 않아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 반응을 낳게 한 것도 한가지 원인이 된다.
공학기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려면 다각적인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기술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생활 속의 요소로서 받아들일 수있도록 하는 실사구시의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고 시절부터 실제로 뜯어보고 만들고 써보고 이해하는 식의 체험교육이 필요하고, 또 실업계 인문계 구분없이 일인일기의 교육을 시키는 것도 고려할 일이다. 한편대학과정에서는 인문사회계에 공학기술 과목을 교양필수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나란히 이학공학계에 법, 환경, 경제, 경영등 사회성 과목을 교양필수로 지정한다면 전문분야들간에 이해와 협조를 도모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제도의 개선은 더욱 직접적인 사안이 된다. 기술사회를 이끌어갈 사회적 지도자들에게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공학기술과목을 필수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또 전국 구 국회의원직에는 공학기술인이 꼭 포함되어야 하겠고, 대통령 보좌관 중에는 기술특보가 있어야 하겠다. 기술직 공무원과 변리사를 전문기술분야 전반에 걸쳐서 기용할 수 있도록 그 채용인원을 현실성있게 대폭 확대해야 한다.
요즈음 제기되고 있는 법과대학의 "로 스쿨"화 시에는 특히 공과대학 출신들 을 상당비율로 입학시켜 국내외 기술 분쟁에 전문성 있게 대비하도록 해야하겠다. 한편 통상산업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처를 엮는 부총이를 두는 것도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공학기술의 사회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대중매체의 역할이 크게 기대된 다. 묻혀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공학기술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공학기술 들을 실생활과 엮어서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을 방영한다면 사회에 대단히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이때 유능한 제작자와 연출인들의 도움을 얻어 시류에 맞게 재미를 가하여 극화할 수 있다면 그 파급효과가 더욱 크게될 것이다.
결국, 공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관련제도들을 재정립하고 공학기술 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일은, 기술경쟁 미래세계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사회 전체의 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학교육.기술이전.공학인 위상제고를 목적사업으로 한 "공학기술학회"의 설립과 최근 통상산업부가 마련한 "공업 및 에너지 기술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중 "한국공학원"설립과 과학 재단 및 호암재단이 공학상 제정 등은 고무적인 출발점이 된다 하겠다.
<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