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창밖으로 길게 늘어선 다른 아파트를 보며어릴때 살던 시골집의 흙돌담을 생각한다. 집에 전화는 없었지만 장롱위에라디오가 있었고 대청마루에는 유성기가 있었다. 논둑과 뒷동산에서 뛰며 놀던 개구쟁이 친구들과 함께 유성기로 "시인과 농부"를 듣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흙도 보이지 않는 아파트 마루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오디오.비디오.컴퓨터 (PC).팩스.전화기 등의 복잡한 배열은 정보문화에 피곤을 느끼게 한다. 정답던 농경문화와는 이제 영원히 이별이란 생각이 들어 허전하기까지 했다.
라디오와 유성기가 통합되어 오디오가 되고 다시 텔레비전과 연결되어 오디 오/비디오(AV)가 되더니 비디오 CD가 유성기 판을 대체해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음악과 영상을 함께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수학계산을 위해만들어졌던 대형컴퓨터가 문서를 기록하고 저장하며 전화와 연결되어 전송과 수신이 가능하며, 크기도 작아져서 개인용으로 쓰인다. 팩스는 문자의 전송 과 수신은 물론 컴퓨터의 프린터로도 쓰인다. 컴퓨터에는 CD-롬의 이용을위한 스피커도 부착되어 있다.
이제 가전제품의 대표주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로 좁혀진 느낌이다. 앞으로양자의 영역이 계속 존속될 것인지, 아니면 한쪽으로 통합될 것인지, 멀티미디어가 다양화되는 시대추세에 맞춰 더욱 다양해질 것인지, 반대로 커플 미디어나 싱글미디어로 단순화될 것인지 흥미롭다. 기술은 양쪽으로 발전하겠지만 승부는 편리성에 따른 이용자의 선택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팩스에 전송되어온 소식이 있는지 확인하고, 컴퓨터를 통해 신문사가 제공하는 주요 뉴스를 조감한 후 회사의 정보망과 연결해 긴급보고나 결재서류를 처리하고나서야 텔레비전을 틀고 신문을 찾는다. 출근 길에는 차안의 전화로 업무보고를 받고 지시를 한다. 출근과 동시에 컴퓨터 와 전화를 통해 통보된 우선순위에 따라 회의가 열리고 중요 의사결정과 업무확인이 이뤄진다. 회의를 마치면 현장확인이 뒤따른다. 정보시대에는 실로 사람이 일을 하는지, 정보에 밀려서 일을 하게 되는지 구분이 어렵다.
마음은 아직 학교의 캠퍼스에 있고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기분은 여전한데, 현실은 환갑이 멀지 않고 격변하는 기술에 매달려 사회와 경제도 매일 변모하고 있어 불안하다. 그렇다고 인생은 결코 길지 않으며 짧지도 않다. 많은 경험을 후세에 물려주고 있다.
1990년 7월에 사장으로 부임해 9월초에 루마니아와 소련을 방문하고, 후에중국 및 베트남과의 수출상담을 통해 우리나라 교환기 수출의 길을 열었고, 지금은 앞의 4개국에서 6개의 합작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달 말에는 미국의 GE사를 방문해 무궁화위성에 설치될 방송과 통신장비를 우리가 만들기로 합의하고 돌아와 한국통신의 입찰에 성공했다. 드디어 5천년 역사이래 처음으로 우리의 인공위성인 무궁화호가 금년 7월에 하늘로 힘찬 발사를 기다리며 최종점검을 받고 있다. 보다 편리한 이동통신전화의 보급을 위해 정부 가 표준기술로 정한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의 디지털 이동교환기도 세계에서 최초로 상용시스템을 만든다는 사명감과 무한한 애정으로 개발해 정부의 개발단에서 실시한 제1차 기본기능시험에 응시, 합격통보를 지난 1월28 일 받았다. 이와 연계해 개인 휴대통신시스템(PCS)의 개발에도 우리 연구원 들이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사업에는 첨단기술이 요구되고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커서 한두 회사가 모두를 감당할 수는 없다. 또한 발전을 위한 경쟁도 필요 하다. 따라서 정부의 방향설정과 정책지원, 산업체의 협력은 물론 국민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작년말 초고속 정보망을 담당하던 체신부가 방송과 정보기기.소프트웨어 등을 총괄하고 교역업무까지 관장하도록 정부조직이 개편돼 명칭도 정보통신부로 바뀌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정보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복잡해지는 기기들의 이용을 위한 교육과 새롭게 형성되는 정보시대의 새 질서와 사회규범에 관한 교육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절실한 때이다. 정보시대에 적응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삶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벌어지게 된다.
농경문화에 향수를 느끼고 정보문화에 피곤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직도 정보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기술과 경제사회의 흐름은이미 우리의 선택의 여지를 좁히고 있다. 그리고 정보문화에 친숙해 지고 정보문화속에서 일상생활을 하게 되면 더욱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