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52)

선 마이크로시스템사의 지분소유로 인해 맥닐리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재산이 그렇게 크게 불어났어도 그는 하키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대형 스크린 TV와 15달러 하는 하키 스틱 세트를 제외하고는 구입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그가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87년에 4일간의 골프시합을 개최하는 데 9만달러를 쓴 것이 돈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경우였다. 다른 선사 동료들은 프르쉐 카레라스를 몰고 다니기를 좋아했지만 그는 고물차 를 계속 타고 다녔다. 부유한 집안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값싼 것을선호했고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를 처음 설립했을 때 직원 들은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다른 건물에 몰래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곤 했다.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긴축재정은 회사가 수백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후에도 계속 되었다. 예를 들어 맥닐리는 자신을 포함한 전 직원은 출장시 밤 비행기를 이용하던가 2등 좌석을 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닐리의 책상 위에는 회장 겸 절약운영자(Chairman and Choap Operator)"라는 명패가 놓여있다. 잡스와 맥닐리는 성장배경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서민출신인 스티브 잡스는 갑자기 출세한 사람들이 자주 그렇듯 애플사에서 뿐 아니라넥스트에서도 회사 공금을 무절제하게 사용했다. 반면 부유층 자제이면서 명문대학을 졸업한 스콧 맥닐리는 특권 계층이 내세우려 하는 허례허식을 혐요 하며 잡스와는 반대로 절제된 생활을 했다.

맥닐리는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부친의 영향으로 MBA과정으로는 비교 적 인기없는 제조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디자인, 제조 및 판매에 관련된 일이 진정한 일로서의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했고 다시 공장감독으로 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원을 갓나온 사람으로 자신이 바라던 공장일을 얻기란 불가 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일자리를 찾으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때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주유소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모든회사들은 그가 경영전략 관련부서에서 근무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렇게 되면 나는 현장에서 남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생각만 해야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를 처음 고용한 FMC는 그가 먼저 "제조 "분야에서 일한 후 그가 원하는 공장 관리일을 시키겠다는 조건으로 그를 고용했다. 후에 그는 작은 컴퓨터 제조업체인 오닉스사로 가서 공장 관리일을 할 수 있었고 바로 그 자리에 있을 당시 커슬라의 제안을 받고 선사에 합류 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제조 실무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지닌 그는 잡스보 다 제조비용에 관련된 문제에서 확고한 식견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컴퓨터 보드제조나 조립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이 제조비용을 줄이고 선사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결론을 내린 그는 모든 일을 하청업체에 맡겼다.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회사로 성장한 이후에도 한 때 모든 조립을 외부 하청에 맡겼고 제품의 운송 까지도 하청선적업체가 맡았기 때문에 정작 선사 직원들은 가장 인기 있는컴퓨터를 만져 볼 기회조차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 스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제조활동을 추진했다.

맥닐리는 자신이 신에 가까운 투시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 그는 오닉스에서 근무하고 있을 당시 커슬라와 같이시작한 사업에 대해 거리낌없이 얘기했다. 그 두 사람은 대학가 근방에 여러곳의 워드프로세싱센터 설치를 지원하기 위해 데이터 덤프라는 회사를 창립 했다. 그러나 그 회사는 두 젊은이가 쏟아부은 자금뿐 아니라 다른 투자가들 이 낸 7만5천달러도 모두 날려 버리고 파산해 버렸다. 선사가 수십억달러 규모의 큰 회사로 성장한 이후 맥닐리는 그의 성공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 그는 오랜기간을 통해 수없이 많은 업적을 남겨서 최고 자리를 오 래지킬 수 있는 것은 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디지털 이퀴 프트먼트사의 창립자인 켄 올슨과 자신처럼 단 시일내에 성공한 사람들을 명확히 구분하여 말하였다. 맥닐리는 잡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 동료들 중에서 말을 달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그들은 운 좋게도 시기를 잘 타고 났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하며 잡스를 넌지시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