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5)

전통적인 대학 강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전통적인 이름을 가진 일리노 이 대학의 플라토(PLATO)라는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은 다 낡은 텔레비전 세트와 16개의 키가 있는 키보드로 이루어졌고 다른 방에서 손으로 슬라이드 를 집어서 컴퓨터 스캐너에 비춰야 화면에 그림이 나타나는 시스템으로 1960 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점차 개선되어 1백50여개의 강좌 를 완전 전산화시킨 매우 큰 시스템이 되었다. 일일이 손으로 슬라이드를 잡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은 1970년대 말에이르러서는 스와힐리어 과목에서부터 시작하여 로켓 강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강좌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라토에 대한 강의에는 이용되지않았다. 플라토는 민간 부문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넥스트의 후반시 기와 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료로 대학에 구형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대여해온 미니애폴리스에 본사를 둔 컨트롤 데이터사는 1977년 이미 개발된 시스템 강좌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일리노이대학으로부터 플 라토에 대한 소유권을 인수받았다. 컨트롤 데이터는 프로그램 개발에 거액을 투자하여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서 대학뿐 아니라 국민학교와 직업 교육 기관 에까지 시스템을 판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컨트롤 데이터 의 노력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컨트롤 데이터는 몇년이 지나 9억달러의 적자를 내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윌리엄 노리스는 창립자라 는 위치와 권위를 내세워 사업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라토로 계속 수익을 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컨트롤데이터 이사진 들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

그럼 왜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여 계속 확장시킨 플라토가 빛을 보지 못했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은 기능을 계속 개발했기 때문이다. 플라토 는 대학이 기꺼이 플라토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어 있는 본사에 있는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전화선을 통해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을 임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개발되었다. 1960년대에 타당한 전제였다. 그러나 1970년 후반 애플과 같은 여러 회사들이 플라토 터미널의 월간 임대료 1천1백달러 이하에 퍼스널 컴퓨터를 제공하게 되자 중앙 집중 컴퓨터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아니 사실 영원히 사장된 것이다. 그러나 컨트롤 데이터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조류의 변화를 깨닫는 데는 몇년이 더 걸렸다.

플라토의 종말을 고하는 이 시점에서 1980년대 말 넥스트가 고등교육 기관에 넥스트큐브 컴퓨터를 제공할 당시의 넥스트와 플라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넥스트는 제품을 개체로 판매했다. 넥스트 본사 와 연결된 임대 회선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용이 제품 가격에 포함되지 않았다. 넥스트 컴퓨터는 그 크기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내용 그리고 스크린의 모양으로 봐서 매킨토시와 더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넥스트 의 창립자와 대부분의 초기 직원들이 매킨토시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넥 스트가 역사적 배경을 지적해야할 경우가 생기면 반드시 매킨토시를 언급할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굳어져 있었다.(넥스트는 넥스트큐브가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혁신적인 제품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얼핏 보기에 넥스트 제품과 매킨토시가 유사한 점이 많은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넥스트컴퓨터가 발표된 다음에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플라토와 닮은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넥스트컴퓨터의 가격은 학생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연구소가 주관해 야 플라토를 임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학생 또한 학부모가 아니라 연구소 등에서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해야할 정도로 가격이 높았다. 매킨토시의 뒤를이어 퍼스널 컴퓨터 시대에 넥스트를 판매하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마케팅기법이었다. 시대에 뒤진 넥스트컴퓨터를 사려고 한 사람들은 메모리 확장 성과 대형 하드 디스크를 갖춘 첨단 제품을 과연 1만7천달러를 주고 구입해 야할 필요가 있는가를 두고 망설였다. 게다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연간 1천6 백달러를 더 지불해야 했다. 이런 가격은 매킨토시가 캠퍼스에 제시한 1천달 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제안이었다.

교육기관 정도라야 넥스트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이기숙사 방안에서 컴퓨터를 사용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넥스트컴퓨터 는 플라토의 낙후된 기술로 되돌아가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대에 플라토가 처음 등장했을때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컨트롤 데이터사가 1970년대 후반에 플라토를 판매하려고 했을 때 학생들은 퍼스널 컴퓨터를 대신 살 수 있었다. 그로 부터 10년후 넥스트의 사업 전략은 분명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고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방 안에서 그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환영받을 리 없었다.

넥스트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면 넥스트 큐브컴퓨터와 플라토터미널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유사점 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기를 거부하는 완고한 창립자의 지시에 따라 제품을 개발했다. "남들이 남쪽으로 가는 것을보면 나는 왠지 북쪽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컨트롤 데이터사의 윌리엄 노리스였다. 잡스도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른사람에 대한 반감은 사업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때때로 타협점을 찾는 것도 좋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않았다. 게다가 두사람은 모두 제품 기술이 뛰어나면 별도로 마케팅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