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자교환기가 베트남 시장에 진출할 당시, 알카텔사가 왜 국적 없는 교환기를 사느냐고 베트남 측에 항의했다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유 인 즉 국제학술논문지와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논문 발표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한다. 이와 같이 학술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만든 전자교환기 같으면 다른 나라 것들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 뻔하다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불쾌하면서도 다른 한편 곱씹어 볼 만한 교훈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학술의 뒷받침이 없는 기술이란 오늘과 같은 고도 기술 산업 사회 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가 희망하는 기술입국은 학 술자입과 교육자입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릇 학술 연구나 교육은 대학본연의 영역이겠지만, 학술 발전과 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학회의 역할 또한 이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띤다.
주지하거니와, 우리나라에는 전기.전자.정보.통신 분야에 전기 전자 정보 통신 음향 전자파 정보보호 전기전자 전기재료 조명 퍼지 자동제어 방송 정보 처리 등 십여개의 학회가 있다. 한정된 인력 자원 속에 학회들이 난립하다보니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학보 회원 수가 적어 건전 한 재무구조 형성이 불가능하고, 그로 인해 불합리한 학회운영이 초래된다.
무엇보다도학회가 학술위주가 아닌 사업위주로 운영될 수 밖에 없게 되는것이 문제이다.
회비 수입으로는 예산의 일부밖에 충당할 수 없으므로 나머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제각기 여러가지 사업을 일으키게 된다. 연구과제를 확보해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오버헤드를 받거나, 각종 행사와 사업을 벌여 산업체 의 협찬을 받아 예산을 충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회 차원의 공동 연구가 아닌 한 개별 연구를 학회가 중간 도급 관리 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며, 또 학회들이 앞다투어 산업체 협찬을 방아내는 것은 커다란 "민폐"가 아닐 수없다. 학회의 난립은 관.학간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초래한다. 전문가 집단 이 정부에 대해서 할 일은 전문지식에 입각한 건전한 비판, 자문 및 정책 제시이다. 그러나 경제형편 때문에 학회마다 서로 유관 정부부처와 "좋은" 관계를 맺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관변 행사를 맡아 주관해 주고, 정책 자문에 있어서도 관의 의도에 맞게 들러리나 서줄뿐, 전문가 집단으로 서의 건전한 비판 기능은 발휘하지 못한다.
학회의 운영주체에도 문제가 많다. IEEE와 같은 세계적인 학회를 살펴보면, 응당 학술적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구심점이 되어 학회를 운영해 나간다.
그러나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뿐더러, 참여의 기회조차도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서 또 다른 학회를 만드는일이 생긴다.
당연한 귀결이 되겠지만, 학술부문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학회 의 난립, 분야의 중복으로 인해 전문가 집단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학술활동 의 중심이 되지도 못한다. 학술 부문을 대표하는 학술논문지와 학술대회 모두 기반이 취약하다. 학술논문논문지의 경우 논문심사료 부과, 눈문게재료의무 납부, 회원가입 조건부 논문접수 등 경제적인 독소조항이 있고 학술대 도 심사없는 무분별한 논문수집과 백화점식 분야 열거로 인해 충실한 학술발표 및 토론의 장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학회의 난립에서 오는 구조적 것들이기 때문에, 오직 학회들을 통합할 때에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 학회를 통합 할 때에만 안정된 재정구조를 갖출 수 있게 되고, 그 바탕위에서 진정한 학술 발전과 교류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전기.전자.정보.통신분야 통합을 위한 방법 및 절차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단체에서 연구되어 온 바 있다. 또 신호처리, 통신.정보등 여러가지 전문 분야별 학술 대회가 학회의 벽을 넘어서 합동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8대 학회 장 협의회가 결성되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기반을 더욱 성숙시켜 학회 통합을 실천에 옮길 때이다. "2001년"을 통합 학회의 원연 으로 잡고, 올해 곧 학회의 대표들로 통합 준비반을 발족시켜, 대통합의 마스터 플랜을 세울것을 제안한다. 관과 산은 학이 벌이는 이 역사적인 사업을 적극 성원하는 뜻에서 통합 학회 청사를 하나 마련해 줄 수 있으며 좋겠다.
세계화 대열에 서기위해 관이 정부 기구 축소 재편의 산고를 치르고, 기술경 쟁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산이 혼신의 노력을 비치는 것에 발맞추어, 세계수준의 학술 한국을 이룩하기 위해 이제는 학이 개혁의 진통을 감내할 때이다. 작은 욕심을 버리고 함께 노력하여 "하나의"학회, "학술의"학회를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하겠다.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