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면당하는 국산 AFC

지방자치단체 지하철 건설주체들의 행태가 괘이하다. 어떤 연유로 지하철 역무자동화설비 AFC 를 도입하면서 한결같이 국내업체들을 홀대하고 외국 업체 들을 우대하는 것인가.

부산교통공단이 최근 실시한 부산 지하철 AFC 입찰에서 입찰자격을 시스템 납품경력이 있는 업체로 한정함에 따라 경력이 일천한 국내 업체들의 참여가 사실상 제한됐으며 프랑스CGA、 영국 TTSI、 일본 도시바 등 외국업체들의 잔치가 돼버렸다.

이에 앞서 실시한 대구지하철 AFC입찰에서 대구시지하철건설본부도 부산의 경우처럼 입찰자격을 한정했으며 내달 실시할 서울지하철 6호선과 인천지하 철 1호선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발주처인 서울도시철도공사나 인천지하 철건설본부도 다름없이 외국업체를 입찰에서 유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입찰을 남겨두고 있는 대구(2.3.4.5호선)、 부산(3.4.

5호선)、광주.대전등의 AFC입찰에서도 국내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은 불보듯 환하다.

인력절감과 시민 편의를 책임지고 있는 지하철 건설 주체들의 이같은 행위는이해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승차권 자동발매기、 승차권자동발권기、 자동개.집표기 전산기、 CCTV등으로 구성된 AFC를 도입함으로써 수작업으로 해야 하던 회계나 각종 통계업무가 전산화돼 인력을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적은 인력으로 시스템이 고장을 일으켜 역무가 마비된다면 문제는 커진다. 하루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여러 설비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구실을 못하면 시민의 발은 여지없이 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설치해 사용해보아서 신뢰성과 안정성이 확인된 시스템을 우선으로 발주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AFC도입 역사는 올해로서 10년째를 맞았다. 지난 86년 5월 서울 지하철 3、 4호선을 시작으로 AFC를 도입하기 시작해 서울에서만도 수차 례 이 설비가 도입됐으며 그 이후 부산.대구.인천.광주 등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초창기인 86년도에 프랑스 CGA사의 AFC를 도입한 후 지금까지1 0년동안 한결같이 대부분 외국산 AFC를 도입했다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잘못됐다. 지하철 건설주체들이 AFC가 국산화된 상황에서까지 외산 AFC를 사용한다는것은 낭비이다. 86년당시 AFC를 첫 도입할 경우 프랑스 CGA사의 뒤에는 국내 의 모업체가 숨어 있었다. 공동 설치형식을 가졌지만 들러리였던 셈이었다.

그후 기술이 취약한 국내 업체들은 외국업체들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힘입어 몇몇업체들이 그동안축적된 기술로 개발한 제품을 선보여왔다.

설령 국산제품이 외국 유명업체들의 제품보다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지하철 건설 주체들이 과감하게 채용했더라면 지하철 구내는 지금처럼 외국산 제품 일색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공사 발주처들이 앞으로도 유지보수나、 부품수급、 소프트웨어수급 등을 더 안정적으로 한다는 명목으로 종전에 사용했던 외산기종을 고집하거나 입찰자격에서 납품실적을 가진 업체로 한정 한다면 국내 업체들의 설땅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업체들의 제품 개발의욕은 꺾이고 덩달아 투자도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외국산 기종을 채용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AFC중 한 설비의 입찰규모만도 2백억~3백억원 가량에 이른다. 지하철이 전국 대도시로 확산되고 AFC도 다양한 점을 감안하면 AFC시장은 결코 적지않은 규모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설비를 갖추는데 드는 비용을 송두리째 외국으로 흘려보내는 일은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지하철 주체들이 과감하게 국산기종을 사용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 를 깨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