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송계 구조 개편 소용돌이

유럽 방송계가 구조 개편에 휘말리고 있다.

그동안 공영 방송 중심 체제를 유지해 온 유럽이 상업 방송의 잇단 출현으로 변혁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유럽의 미디어 그룹들을 새로운 방송 실험에 몰두케 함으로써 방송 구조의 개편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 카날+(플러스)와 독일 베텔스만이 합작 회사 설립 계획을 발표한 것은 방송 구조 개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카날+는 유럽 최대의 페이 TV(유료 방송) 업체이고 베텔스만은 유럽 최대의미디어 그룹.

유럽 방송계에서 내로라 하는 이들 양사의 합작은 프로그램 제조업체들로부터 TV 방영권을 인수、 시장 확대를 도모키 위한 것으로 이들의 지명도로 인해 업계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같은 미디어 업체간 제휴는 그러나 요즘 유럽에선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현지 방송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방송 구조의 변혁 과정에서 살아 남기 위한 업체간 합종연형이 보편화 되고있다는 것이다.

방송구조의 변혁이란 지금까지 공영 방송의 위력에 눌려 지내던 상업 방송의 입지가 크게 확대돼 가고 새로운 디지털 방송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상업 방송을 허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년 사이의 일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90년에 들어서야 상업 방송에 생방송을 허용했고 스페인도 89년부터 상업 방송이 허용됐다.

이같은 짧은 역사로 인해 유럽의 상업 방송은 공영 방송과의 시청률 경쟁에 서 뒤지고 있지만 향후 사정은 달라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상업 방송 붐이 이같은 전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조사 기관인 이다트(IDATE)의 보고에 따르면 94년말 기준으로 유럽 연합(EU)내 상업 방송 채널은 모두 1백65개.

이는 6년만에 채널 수가 배증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상업 방송의 인기 상승 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따라 상업 방송사들의 주 수입원인 광고 수입 총액도 93년에 이미 87년 실적 대비 2배에 달했다.

이같은 추세는 상업 방송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상업 방송의 인기가 곧바로 개별 상업 방송사의 경영 호조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더딘 경제 성장과 방송사의 난립에 따른 총 방송시간의 확대가 광고 수입의 단가를 낮추는 압박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부 방송사의 경우 광고 유치를 위해 실제 광고 단가를 책정 가격의 3분의1 수준으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10분의 1에 불과한 방송사도 있다는 것이다.

시장 전체로는 호황이지만 개별 업체의 입장에선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가입자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이런 상황과 밀접한 함수 관계를 갖고진행되고 있다.

가입자 확대는 광고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광고 단가의 인상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상업 방송사의 사활이 달린 중대 사안이 되고 있다. 때문에터너 방송사의 카툰 네트워크 및 NBC 슈퍼채널 등 일부 업체는 위성을 이용 전 유럽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상업 방송사들의 생존을 건 가입자 확보 노력은 다른 측면에선 공영 방송 시청자의 감소를 야기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공영 방송의 시청자 점유율이 최근 4년새 55%에서 44%로 떨어졌다는 조사보고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특히 독일의 국영 방송인 ARD와 ZDF는 이 기간중 시청률이 25% 격감했고 스페인의 TVE도 20% 가량의 시청자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 방송사들의 수입 확대 노력은 또 페이 TV의 활성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선 지난 84년 유럽 최초의 페이 TV 업체로 설립된 카날+의 시청 가구수가 20%에 달하고 있고 영국 BSkyB의 시청 가구수도 18%에 이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아직 페이 TV 가입률이 10%를 밑돌고 있으나 성장 가능성은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독일 국영 통신업체인 도이치 텔레콤(DT)이 지난해 베텔스만과 제휴 계획을 밝힌 것이나 이탈리아 키르치 및 네트홀드、 리치몬트 등 3개 TV 방송사가 연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페이 TV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 지털 방송 기술의 발달은 이런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 방송은 기존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채널 수를 대폭 확대할 수 있어잔여 채널을 통해 주문형 비디오 등 가입자 확대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 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영국 BSkyB는 내년중 1백20개의 디지털 채널을 확보할 계획을 수립중이며 프랑스 카날+도 빠르면 올해말 디지털 방송을 계획하고 있는 등 유럽의 주요 미디어 업체들이 앞다퉈 이 분야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케이블 TV의 보급 확산과 오는 98년으로 예정된 통신 자유화에 따른 통신 업체들의 방송 진출 노력 등이 맞물려 그동안 공영 방송이 주도해 온 유럽 방송계가 상당기간 변혁의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오세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