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체계가 완성될 무렵인 9월에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사는 고객들 사이에서 넥스트 컴퓨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1백년 의 역사를 가진 베벌리힐스와 뉴욕에 있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서 큐브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윌리엄 모 리스와 신생기업인 넥스트의 협상은 할리우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사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카메라를 더욱 의식했으며 어깨동무를 해보이며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려 노력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야망에 찬 초년생들이 입사하면 먼저 우편 정리부 터 시키며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 회사에서 일했던 에이전트들이 독자적으로 크레 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를 창립하여 라이벌 업체로서 크게 성공하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들에게 고객을 많이 빼앗겼으며 새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약화된 이미지 때문에 활동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부동산 투자로 얻은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 에이전시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했고 경쟁업체들이 매킨토시를 대량 구입한다는 소식을 듣자 독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매킨토시 다음의 컴퓨터, 즉 넥스트 를 구입하여 단숨에 유명해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넥스트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거래를 통해 넥스트에 대한 대중들의 신용도를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했다. 윌리엄 모리스가 표출하고자하는 보수적인 이미지는 넥스트의 목적에 꼭 맞아 떨어졌다. 가장 오래된 에이전시와 거래를 하게 되면 넥스트는 신생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기술 집약적인 환경 이외에서도 큐브컴퓨터가 널리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에이전시는 업무의 특성상 언론 매체를 잘 다루었고 넥 스트처럼 그 규모에 비해 많은 관심을 모으는 데 능숙했다. "포천"가 선정한 5백대 기업에 제품을 팔아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만큼 언론의 관심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두 회사는 서로의 협상 방법에 대해서도 만족해 했다. 그 에이전시는 스티브 잡스 말고는 협상하지 않으려 했고 비즈니스랜드또는 넥스트의 임원진들과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으로 잡스와 연락이 안될 경우 그들은 또 다른 유명인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고위층하고만 거래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신조는 잡스 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의 자유방임적 마케팅 전략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 는 업계를 대상으로 미끼를 던져 놓고 어떤 업체들이 그 미끼에 걸려드는 지를 지켜 보았다. 그는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했으면 절대로 윌리엄 모 리스를 고객으로 만들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이런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넥스트 컴퓨터 시장은 윌 리엄 모리스처럼 스스로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고객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고 믿었다. 잡스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맺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조건들 을 받아들일 자세도 가졌다. 그는 2백70대의 컴퓨터를 팔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율을 제시했던 것이다. 할인 조건에 대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넥 스트는 그 조건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대외적으로는 할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번 거래를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잡스는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넥스트와 협상할 당시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음악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음악 부서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IBM호환 기종 하나뿐이었다. 컴퓨터의 사용을 회사 전체로 확산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 에이전시는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지나치게 수준 높은 제품을 도입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문을 구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트직원들 대부분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처음에 미니컴퓨터를 설치하여 각 책상에 설치될 터미널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토록 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처했던 영화부서 부책임자였던 존 번햄이 넥스트가 "대단한 제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 기계를 한번 사용해 보자고 제의했다. 그의 동료인 마이크 심슨도 그의 의견에 찬성하며 넥스 트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귀재라는 평판을 받던그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부하였던크리스 가드스탁은 IBM호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지 못해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 볼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하 지 않았다. 심슨의 컴퓨터에는 대량의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포기하고 대신 구식방법으로 파일을 정리했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이전에나온 컴퓨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심슨이 1980년대 말에 나온 넥스트를사용할 리 만무했다. 그는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보다 사용이 용이하고 값도 저렴한 컴퓨터의 사용법을 배우려는 의지도 시간도 없었지만 차세대의 "걸작 "으로 알려진 컴퓨터에 거금을 투자하려 했다.
전문적인 기업가로서 부푼 꿈을 가졌던 마이크 심슨이 또 다른 꿈에 넘어간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용이 편리한 넥스트 컴퓨터가 쉴사이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답해야하는 윌리엄 모리스사의 업무량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전에 넘어간 것이다. 한 직원이 하루 평균 50 내지 2백여통의 전화를 받는데 심슨처럼 직위가 높은 사람은 전화 4개를 한꺼번에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 한대로 통화하는 동안 부하 직원은 또 다른 통화 를 준비하고 2대의 전화가 연속해서 걸려오는 것이 보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