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양국 정부차원에서 추진해온 멀티미디어협력사업이 일본측의 무성의로 공전하고 있어 모처럼 성사된 첨단기술교류의 장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통산성은 지난해 9월 우리정부와 1차 실무회의를 통해 민간차원의 멀티미디어 연구교류회 결성、 표준화정보와 자료의 상호교환、 전문가의 교환연수 비디오회의 등에서 협력키로 합의해 놓고도 후속 프로그램을 마련하지않고 늑장을 부리고 있어 우리측 실무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는 보도다.
우리측의 적극적인 제의와 의욕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진전된 게 단 한건도 없는 것만 봐도 일본측의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우선 실무회의일정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 우리측이 4월에 열자고 제의한 2차 실무회의가 뚜렷한 이유없이 무산된 데다 6월중에 개최하자는 수정 제의에도 묵묵부답이다.
이에따라 당초 우리나라 통상산업부와 일본 통상산업성간에 운영키로 했던데스크톱 비디오회의 시범사업은 계획조차 수립치 못하고 있으며 양국정부산하 인력양성기관을 통해 멀티미디어전문인력을 상호파견한다는 방안도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첨단기술협력에 인색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실무자들이 이미 합의한 사안은 양국 기술협력의 새지평을 열 수있느냐의 여부를 평가하는 시험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성사 되어야 한다.
한일양측의 실무접촉에서 합의한 내용을 일본측이 일방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은 멀티미디어협력사업에 뜻이 없다는 의사표시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고야우리측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일본측이 멀티미디어협력사업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기술에 관한한 내줄 것만 있지 얻을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첨단기술이 우리나라에 넘어가 제품이 상품화될 경우 부머랭효과로 인해 일본측의 세계시장 석권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이에 따라 멀티미디어 협력을 기대했던 국내 전자업체들의 실망감은 이만저 만이 아니다. 첨단기술제공에 인색한 일본 전자업체들의 생리로 볼때 이번 멀티미디어 협력사업은 획기적인 일로 평가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모든 게 공염불로끝났다. 일본측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 멀티미디어 협력사업을 한일간 무역불균형을 무마시키는 "카드"로 활용、 우리측의 예봉 을 피해나가려는 술수에 지나지 않다. 올들어 우리나라는 전자분야에서만 무려 5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낸 것도 이들의 교묘한 의도를 엿보게하는 대목이 다. 여기에 현격하게 벌어진 첨단기술의 격차는 양측의 기술협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상보관계에 손상이 가기때문이다. 다시말해 받을 것만 있지 줄게 별로 없다는 것이 협력을 어렵게만드는 본질이다.
물론 그동안 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본적인 문제가 하나도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볼 수밖에없다. 멀티미디어산업은 컴퓨터-통신-반도체 등을 결집、 첨단산업의 총아로 떠오른지 오래다. 세기 전자업체들이 멀티미디어에 승부를 걸고 집중투자하는 것도 21세계 전자산업 석권전략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우리는 멀티미디어 협력사업을 주도할 위치가 아니라 선진국들의 처분을 봐야 하는 수세적인 입장이다. 물론 첨단기술을 많이 확보 하고 있으면 입장이 바뀐다. 업계의 과감한 기술개발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따라서 양국의 협력관계는 무엇보다 일본 이 얼마나 전향적인 자세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이 앞서있는 일본이 우리의 협력요구를 곧이곧대로 들어줄리 만무하다.
우리는이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