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와 삼성전자가 정부의 공산품 값 인하 유도정책에 부응이라도 하듯 7대 전자제품의 가격을 또다시 내렸다. 주력제품의 경우 5~7%정도 인하한 양 사의 이번 조치는 경영이익을 고객에 환원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정부의 수입선다변화품목 조기해제방침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 지난해 인하조치와 달리 그 의미가 퇴색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가전업계가 가격인하조치를 전격 단행한 데는 재경원의 조사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정경제원은 최근 소비자보호원과 공동으로 서울과 도쿄 뉴욕 등 7개국 8개도시의 주요 공산품 가격을 조사해 "우리나라 공산품 값이 도쿄 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특히 컬러TV 세탁기 오디오 컴퓨터등의 가격은 세계에서 서울이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또 수입상품의 국내 소비자가격도 같은 종류의 국산품 가격에 비해 평균 66%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국산 가전제품이 수출돼 국내가격과의 비교로 덤핑시비에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뉴욕이나 런던에 비해 서울의 공산품 값이 2배이상 높고 서울보다 물가지수가 53%높은 도쿄에서 판매되는 값 보다 비싸게 팔리는 품목이 있다는 것은 높아도 너무 높은 것 같다. 공산품의 99.9%가 수입개방된 상황인데도 공산품 가격이 높은 것은 분명 유통과정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재경원도 이같이 공산품의 국내외 가격차가 크게 발생하는 이유를 유통구조 의 낙후성、 경쟁촉진 미흡、 소비관련세제의 과다등으로 꼽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유통산업의 낙후로 물류비가 높은 것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체 들이 전속대리점체제를 통해 재판가 유지및 판매지역 제한、 경쟁제품 취급 금지등으로 소비자가격을 통제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재경원은 시장구조및 생산업체 재무구조등 전자제품의 가격인하 가능성에 대한 분석작업에 들어가 가격인하 유도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입증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격인하요인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가격인하유도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이 그간 생산자에서 일본처럼 소비자권익 위주로 바뀐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차피 물가통제에 대한 정부수단도 한계를 갖는 개방화시대다. WTO의 출범、 선진국모임인 OECD가입을 목전에 둔 상황까지 전제하면 소비자위주 경제정책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전제품등 공산품가격을 세계각국 수준으로 인하하는 핵심적 인 전략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산품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세율체계 를 조정하는 문제가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전제품의 값이 높은 것은 선진국에도 없는 특별소비세와 특소세의 30%에 달하는 교육세、 방위세등 소비관련세율이 제품 값의 31.45~45.75%에 달하는데 있다. 따라서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에 일방적으로 가격을 내리라고 주문하는 것도무리일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으며 물가안정에 어느정 도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정부는 업계가 원자재값 상승、 원화절상등으로 원가부담이 가중되고 있는상황인데도 제품가격을 내렸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자업계가 경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가격을 내릴 경우 연구개발 투자 위축、 저질제품 양산은 물론 부품업체의 납품가 인하압력으로 이어져결국 경쟁력저하로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에 공산품 값 인하를 강압적으로 요구하기에 앞서 공산품 의 세금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통상산업부가 공산품 원가를 분석、 이를 바탕으로 재경원과 세율체계 조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가전업체들도 유통시장 개방이 6개월앞으로 다가온만큼 외국 유통업체가 들어오더라도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기업내부의 원가절감등을 통한 합리적인 가격인하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업계의 가격인하조치를 계기로 정부는 공산품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높게 유통되고 있는 원인을 철저히분석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정부와 기업의 이같은 노력다음에 국민 의 소비행태의 변화를 촉구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한마디로 기업들은 상품의 질은 높이되 가격을 떨어뜨리는 경영합리화를 해야한다. 정부도 공산품가격이 높아진 원인을 낱낱이분석 마련한 개선책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또한 덮어놓고 유명브랜드만찾는 분수넘치는 소비행태는 국민들 스스로가 고쳐야할 폐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