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계에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길러 내겠다는 목표아래 내년에 "노벨상 의 산실"로 고등과학원(KAIOS)을 설치、 운영한다고 발표한 것이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홍릉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분원에 설치될 고등과학원은 우선물리.생물.경제 등 3개 분야에 석좌교수 5명과 10명의 연구원을 초빙하여 내년에 시범적으로 개원된다.
또 오는 98년까지는 수학.화학분야까지 총 5개 분야에 대해 노벨상 수상자 또는 이에 상당하는 수준의 석좌교수 15명과 초빙 연구원 50명、 박사후과정 학생 및 대학의 조교급으로 구성되는 유동연구원 1백명등 총 1백65명의 연구 진을 확보해 나간다는 것이 기본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2000년까지 기본시설 및 최소한의 연구시설 확보에 5백60억원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의 출연금으로 6백억원을 조성、 연구원의 인건비 및 연구비에 투자하기로 하는등 총 1천1백60억원을 지원한다는 청사진 을 마련했다.
정부의 이같은 확고한 의지와 함께 최근 각 연구소들이 앞다퉈 노벨상 수상 자들을 국내에 초청、 이들의 경험과 수상배경등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일반인들의 노벨상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최근 1~2개월동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오늘날 CT로 널리 알려진 컴퓨터 단층촬영기술을 처음 고안해 지난 7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미매 사추세츠주 터프츠대의 알렌 코맥교수를 초청했으며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앤터니 휴이시박사를、 또 한국과학기술원도 노벨물 리학상 수상자인 레오 이사키박사를 초청、 강연회를 개최하고 석.박사 학생 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얼마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아예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노벨물리학상 심사위원인 페르 올로프 로브딘박사를 초청、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해법 에 대한 특별강연회를 가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정부의 고등과학원 설치 계획이나 각 연구소의 노벨상수상자들의 초청 강연등은 자라나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목청껏 외쳐오면서도 정치논리 및 경제논리에 밀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는 상황에서 노벨상은 우리에게 과학기술의 르네상스시대를 열 수 있는 결정적인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논리는 일본등 타 선진 국에서 우주인의 탄생이 우주개발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된 것에서도 쉽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순수한 학문추구의 목적이 아닌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한 교육이나 연구활동에 전념토록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벨상 받을것을 절대 기대하지 말고 연구활동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한 로브딘 노벨상 심사위원의 지적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벨상 을 받기위한 그의 몇가지 조언을 보면 *연구결과는 적극적으로 논문이나 저널에 발표해야 하고 *대발견에만 연연하지 말아야 하며 *아이디어는 누가뭐라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고 *아주 늙을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그러기 위해선 비타민 C와 베티카로틴을 많이 먹고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또 *노벨상이나 이와 비슷한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과학연구는 그 자체로 아주 큰 기쁨이며 지적호기심을 만족시킬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연구활동에 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노벨상 수상전략"이 요즘대학입시처럼 정답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노벨상은 수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력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에 임하는 긍정적이며 연구자체에 흥미를 갖고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는 과학기 술인의 원론적 자세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등과학원을 노벨상의 산실로 육성하겠다는 발표는 어딘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능력있고 자질있는 훌륭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고등과학원 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이 한나라 과학기술 수준의 척도가 될 수 있고 또 자라나는 청소 년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해도 그것은 학문하는 자로서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성과가 될 수 있을지언정 기본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