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넥스트 컴퓨터의평균 가격이 1만5천달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독일 사람들은 케헬에있는 넥스트 딜러에게 어떻게 값 이렇게 저렴할 수있냐고 물었다. 넥스트는 곧 유럽에서 1백여명의 딜러와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판매를 개시하는데1백만달러를 각각 투자하고 교육등을 지원할 뿐 아니라 재고에 대한 부담도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91년 7월에는 일본 어판 넥스트 운영 체용체계가 완성되어 일본에서도 곧 판매가 개시될 것처럼보였다. 넥스트에 많은투자를 했고 일본에서 넥스트의 독점 판매권을 가졌던 캐논사 가 넥스트와 상당한 마찰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캐논사는넥스트의 가장 큰 경쟁업체인 매킨토시와 선 워크스테이션 제품에 대한 판매 도 담당하고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넥스트의 성공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91년 첫3개월동안 넥스트 매출의 30%가 유럽과 일본에서 이루어졌고, 그 해 중순에는 50%로 그 비중이 늘어났다. 넥스트는 넥스트 컴퓨터의 기능 과 매력은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지리적 경계선으로 없다고 자랑했다.
넥스트를 설치한 모든 사무실.학교.정부기관 그리고 모든 나라가 넥스트에대하여 가지고 있던 환상은 생각보다 위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론 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새로 태어난 넥스트는기존 파트너와의 관계유지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넥스트는 이제 고등 학교와 어학코스기관에는 소홀해졌다. 따라서 영업 사원들은 더 이상 대학을 방문하지 않았고 학생중에서 파트타임으로 고용했던 "캠퍼스 컨설턴트"도 대폭 감원시켰다.
학생들은 시간당 7달러 내지 9달러를 받았는데 그것도 기숙사 방에서 큐브컴 퓨터를 시험해볼 컴퓨터를 임대해야 했다. (속도가 느린 넥스트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되지는 못했다. 잠재 고객들은 넥스트의 속도가너무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캠퍼스 컨설턴트들은 얼마되지 않는 보수때문이 아니라 넥스 트가 주장하고 있는 객체 지향적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넥스트를 가장 열열히 지원해 주었다.
그들은 넥스트를 알리는 선교사의 역할을 했고 어떤 비용를 치르더라도 구할수 없는 충직함을부였다. 그러나 캠퍼스에서의 부진한 매출에 불만족한 잡스 는 그들의 수를 대폭 줄여 나갔다.
고등교육 기관에서의 매출은 부진했다. 잡스가 개량된 신형컴퓨터를 선보였을 때 대학가에서의 경쟁은 한풀 꺽인 후였다. 데이비스 홀에서의 2번째 제품발표회가 끝난 직후 91년 가을에 개최된 에듀컴(Educom)연례 회의에 잡스 는 연사로 초빙되었는데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넥스트에 아직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넥스트컴퓨터가 시연도중 갑작스런 고장으로시스템을 교체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넥스트 부스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복도에서 넥스트의 장래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관심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버클리에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과 같은 데서 3천여대의 매킨토시와 7천여대의 IBM-호환 컴퓨터 그리고 1천5백대의 선 워크스테이션 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넥스트는 불과 30대밖에 도입되지 않았다.
그 당시 대학 넥스트의 속도가 향상되고 가격이저렴했다 하더라도 넥스트와 같이 시스템 전체를 바궈야 하는 컴퓨터는 구입할 능력이 되지 못했었다. 다른 컴퓨터는 구형시스템을 버릴 필요가 없었기때문에 당연히 우선권이 주어 졌다. 넥스트는 과거에 고수했던 가격을 인하하고 대학에 장비를 기증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정책을 포기하겠다고 했음에도불구하고 넥스트의 이미지 개선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제2세대 컴퓨터를발표하고 난 1년후 대학에서의 매출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90년 9월부터 91년 9월까지 13개월 동안 20대 대학 에서의 평균 매출은 캠퍼스당 1백34대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학에서의 판매 는 불과 10여대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수치들은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잡스의 개인적인 사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91년3월 그는 스탠포드대학 MBA과정에 있는 로렌 파월이라는 학생과 결혼하였고 둘다 초혼이였다) 9월에 아들을 보게 되었다. 아기의 탄생은 심각하면서도 익살스럽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