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장소비자가격제 개선 검토

정부가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제도의 개선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 는 현재 권장소비자가격을 폐지하고 공장도가격만 표시하게 하거나 권장소비 자가격을 공장출고가의 일정 비율이내로 제한하는 방안 등 2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소비자단체、 학계、 관련업계 등을 대상으로 여론수집에 들어갔다는 보도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이 제도의 개선을 강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람직한 현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제도를 개선한다는 것 자체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규제완화책의 하나로 볼 수 있으나어느 의미에서 보면 정부가 그간 제조업 위주 산업정책의 기본방향을 유통업 위주로 바꾸겠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분석돼 높게 평가된다.

정부가 권장소비자가격제도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유는 최근 유통업계에 불고 있는 가격파괴 바람을 확산시키는데 이 제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때문이다. 당초 소비자에게 정확한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판매업자의 과도한 이윤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가 유통업계의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바로 이같은 유통업체의 경쟁 저해요소를 제거、 가격파괴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소비자이익 보호와 물가안정을 꾀하자는게 정부의 이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적이다. 국내 가전 및 컴퓨터업체들은 그간 권장소비자가격선에서소비자들의 실질 구매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이 구축한 유통계열화 를 통해 전력을 다해왔다. 최근 가전업체들이 용산전자상가에서 거래되는 자사 상품의 가격을높이기 위해 제품출고를 조정하거나 주요 컴퓨터업체들이 일부 가격파괴형 컴퓨터매장에 항의하고 있는 사례들이 그 단적인 예이다.

전자업체들은 정부의 권장소비자가격 제도 개선 움직임에 대해 권장소비자가 격이 유통점의 판매가격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며 가격표시를 못하게하는 것은 규제완화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같은전자업체들의 주장은 가격결정권이 유통업체를 장악하는 강력한 무기인 만큼이 권리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는 심정일 것이라는 분석이 유통업계의 지적 이다.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의식이 확산되면서 유통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유통점에서 큰 폭으로 할인판매하면 뭔가 하자있는 제품을 판매하는게 아닌가 의심하거나 유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적 시각으로 봐왔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이라도 비싸게 파는 유통점 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만큼 유통업계는 물론 제조업계에도 유통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제조업체가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해 대리점을 제어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개방화시대에 살아나기 어렵다. 공급자시장에선 제조업자가 정한 가격이 소비자에게 통했으나 국산과 외산상품을 다양한 점포에서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현실 여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는 국제수준보다 높은 가격의 상품 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유통시장에서의 가격파괴가 갈수록 가속화되자 일본IBM을 비롯 일부 가전업체들이 권장소비자가격을 설정하지 않는 이른바 오픈가격제 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격파괴점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전자업체들도 이를 이웃의 일로만 간단히 넘길일 만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권장소비자가격제도의 유지를 고집 하기 보다 전자업체 스스로 오픈가격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초기 가격파괴시대에서는 제조업.도매업.소매업이 각각 단독으로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으로만 대응이 가능했으나 이를 지속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유통업체에서 국제시세와 비교, 제품 판매가격을 먼저 결정하고 제조업체는 그 가격에 맞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체계를 갖춰나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전자업체들도 일부 선진국의 사례 를 참고해야 할 것이며 유통업체와 연계하여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저가격 시대에 적응하는 경영의 전환이 요구된다.

권장소비자가격제도 개선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에게 동종 상품의 수입에 더 매력을 갖게 함으로써 수입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일수 있는부정적인 요인도 부인할수 없다. 권장소비자가격제도 개선에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병행, 추진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