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8)

한 분기가 끝날 때가 항상 바빴다.넥스트는 모니터를 다른 업체로부터 공급 받아서 썼는데 납기일이 적어도 3개월은 걸렸기 때문에 넥스트는 흑백모니터 뿐 아니라 컬러모니터 재고를 항상비축해놓아야 했고 컴퓨터 주문을 받기 전에 미리 수백만달러어치의 부품을확보해야만 했다. 또 모니터 재고종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예측을 통해 준비하기보다 순전히 추측으로 준비해야 했다. 캐논사는 넥스트의 생산방식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전문가로 구성된 작업반을 6주동안 넥스트에 파견하여 넥스트가 "적시 생산"이라는 이상적이 지만 비능률적 개념을 버리게 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넥스트 공장은 비수기 에 컴퓨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먼저 조립하고 실제 주문을 받은 다음에는 특수한 부품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소량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넥스트가 제조시설을 직접 운영한다는 것은 재정적인 차원에서 볼때 전혀 타당성이 없었고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제조 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잡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넥스트는 91년 캐논사의 감독하에 아주 조심스럽게 넥스트가 제조한 제품의 품질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캐논은 조사내용을 검토한 결과 넥스트가 주장한 것보다 제품 결함을 훨씬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품질이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당혹 스러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캐논사는 컴퓨터를 해외에서 생산하라고 잡 스에게 촉구 했다. 페로도 캐논사의 편을 들었고 6월에 레드우드 시티에서개최된 회의에 참석한 페로는잡스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이사진에서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그러나페로는 기분이 상당히 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임을 언론에 밝히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 넥스트의 이미지를 보존해 주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넥스트에 투자한 자신의 몫을 보호하는 침착성을 보였다. 페로의 사임은 넥스트에게 큰 타격을 주었지만 그 당시 잡스의 가장 큰 라이벌인 빌 게이츠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어 그 충격이 약간 무마될 수 있었다.

잡스는 댄 르윈을 지위가 낮은 다른 직책으로 밀어낸 다음 자신이 직접 마케팅 업무를 책임져 왔는데 그러는 동안 댄 르윈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계속 물색해 왔다. 댄 르윈의 자리는 일년이 넘게 비어 있었기 때문에 넥스트 의 마케팅은 점점 약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영국 전기 통신 회사인 머큐리 커뮤니케이션사에서 이사로 근무 했던 영국 태생인 피토 벤 큐랜버그가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댄르윈의 후임자가 확정되는 듯 했으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였다. 잡스는 결국 5월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던 마이크 슬레이드를 넥스트의 마케팅 국장으로 채용했다. 그는 아주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스프레드시트인 엑셀의 성공적인 마케팅을 담당 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오기 전에 넥스트는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첫날 직원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지른 실수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기시작했다. 슬레이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그 주식만 팔아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그가넥스트로 오게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 동기를 상견례 때 물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주 큰 회사 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물에서 노는 큰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 넥스트로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도 농담의 기미 없이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던 것이었다.

슬레이드는 사람들에게 넥스트는 바로 지금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던지 아니면 멸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갓 들어온 신참이었기 때문에 지난 6년동안 넥스트가 바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근근히 유지해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초기의 큐브 컴퓨터 가 가지고 있던 문제는 넥스트스테이션의 개발로 모두 모두 해결 되었고, 비즈니스랜드와의 문제도 개별 소매업자와 구축한 새로운 유통 경로로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는 이제 더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넥스트 컴퓨터는 혼자서 자립해 야할 때가 온 것이었다. 넥스트 컴퓨터는 퍼스널 컴퓨터가 아닌 워크스테이션급과 경쟁해야 했다. 퍼스널 컴퓨터는 상호호환이 가능한 얼굴없는 제품으로 사람들은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에넥스트와 같은 프리미 엄급 제품은 값싼 IBM 호환기종과 경쟁할 수 없었다. 슬레이드는 넥스트의 가장 큰 경쟁상대가 선사라고 생각했다.

2.4분기의 매출 실적이 호조를 보였다고 보고 되자 잡스는 넥스트를 담당하는 홍보회사로 하여금 그 희소식을 발표하도록 했다. "수익 1.4분기 대비 86 % 신장 넥스트 사상 최초로 4천6백만달러 매출달성"라는 제목의 보도기사가 발표되었다. 매출이 3.4분기에도 같은 속도로 증가하고 그 여세가 4.4분기에도 계속되었더라면 넥스트는 잡스의 예측대로 그해에 2억5천만달러의 매출을 쉽게 달성 하여 선사처럼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았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와 넥스트의 임원진들은 수익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손실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속앓이를 해야 했다.

자금의 흐름은 갈수록 어려워졌지만 일반 대중과 딜러들은 전혀 그 사실을눈치채지 못했다.

넥스트와 새로 딜러 관계를 맺은 미네소타주 미니아폴리스에 있는 이미지 네트의 예만 보더라도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여 노력했던 넥스트의 노력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가를 알수 있다.

이미지네트는 94년 4월에 넥스트의대리점 승인을 받았다. 이미지네트를 창립한 20대 청년 3명은 과거에 매킨토시를 팔았었지만 점차 넥스트의 첨단기술 특히 전자출판기술에 큰 매력을느꼈다. 이미지네트는 전문적인 딜러로 넥 스트 컴퓨터와 출판업무를 원하는사무실에 넥스트컴퓨터와 커스텀 소프트웨어를 함께 팔았다.

이미지네트는 매장을 갖지 못했다. 이들은 시내상가에 사무실을 두고 직접 고객들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영업활동을 했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을 공략했던 비즈니스랜드와 달리 특정 대상만을 겨냥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큐브컴퓨터의 절반가격에 불과했고 넥스트스테이션 급에서도 가장 저렴한 5천달러짜리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의 책상에 모두 배치하기에 워크스테이션의 가격은 너무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