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알 권리와 살 권리

삼풍백화점 괘몰사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설계를 무시한 증.개축에 따른 과부하 등)、 간접적인 원인(부실공사와 부정부패의 연결고리 등)외에도 상상할 수 없는 역경을 뚫고 생존해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구출해 내는 인간 드라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교훈과 함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교훈도 동시에 안겨 주고 있다.

온 국민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매몰된 실종자를 찾기 위해서 많은 구조대 원과 자원봉사자들이 그야말로 몸을 바치고 있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중장비와 첨단 전자기술、 그리고 의료기술이 전부 동원되고 있음도 알게 된다. 통로가 없기 때문에 사람에 의해 안내는 되었지만 무인로봇촬영기 내시 경, 그리고 심지어는 뇌파(심령술과 신의 계시)까지 활용되었다.

그러나 온 국민에게 비탄과 패배감 속에서도 희망을 안겨 준 우리 삼 남매를 실제로 발견한 것은 사람의 모습과 소리를 사람의 눈과 귀로 확인하는 작업 을 통해서였다. 이는 우리에게 살려고 하는 초인적인 힘과 한 사람이라도 구하려는 인간애가 모든 기술을 우선함을 깨우쳐 주었다.

정보의 신속함에도 놀라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을 그대로 빨리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고(정보의 신속한 전달) 또 시민은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전제 아래 언론은 경쟁적인 현장보도를 했고 시청자는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현재진행중인 사항을 바로 알 수 있어 고마운 마음도 컸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 는 보도진의 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인명구조작업을 방해하지는 않았나 하는의구심을 갖게된다.

알 권리 때문에 살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점과 보도 자제(정 보생산의 자제)의 필요성도 깨우쳐 주었다.

하나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없으며 또 흥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구난작업은 흥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조직과 체계 를 요구한다. 무절제한 구조대원의 투입과 훈련되지 않은 자원봉사자의 참여 통제선 없는 시민들의 참관、 카메라맨들의 저돌적인 침입、 이를 막기 위한 경찰과 군대의 투입 등으로 혼잡은 가중되어 효율성과 상황판단에 지장 을 주게 되었고、 이는 결국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역작용을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생존자 근처에묻혔던 사람을 상황판단 잘못으로 너무 늦게 구출함으로써 병원에서 숨지게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변명할 말을 잃게 된다.

구난관정에서의 총체적인 혼선은 사공이 많았다기보다는 쓸 만한 사공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또 정보의 홍수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추려내지못한 결과이며、 이 혼선은 실종자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정보화 사회가 어떻고、 멀티미디어가 어떻고、 인터네트가 어떻고、 네티즌 의 윤리가 어떻고 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통계조차 만들지 못하는 우리가 정말 정보화를 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허탈감에 빠진다. 있어야 할 정보와 없어도 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선별하는 능력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전문가의 참여도 미흡했음이 아쉽다.

과거의 교훈은 쉽게 잊어버리고 앞만을 좇아 무조건 달려나가는 바람에 대형 참사가 계속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인가. 이제는 무고히 희생된 이들을 위한 위령탑의 건립과 함께 삼풍백화점 괴몰사고의 원인과 구난과정에서의 착오、 그리고 여기서 얻은 과학적인 사실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이를 세계에 정보 로 제공하는 우리의 진솔함이 국제적 수치를 면할 뿐만 아니라 선진 안전문화를 앞당기는 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