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도 칠판도 없다. 잔디가 펼쳐진 넓은 캠퍼스도 없다. 컴퓨터를 켜고 학교의 통신망에 접속시키기만 하면 바로 그곳이 진리가 숨쉬는 대학 안이다. 컴퓨터 통신상에 세워진 "가상현실대학(Virtual University)"은 진리탐구에 대한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거부한다.
때문에 강의를 받기 위해 굳이 지하철이나 버스에 시달려가며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수강과목란에 들어가 강의내용을 들어보고 의문사항이나 어려운 점은 대화방에서 교수에게 물어보면 된다. 대화방에는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친구들도 있으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의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편리한 시간에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
"강의"냐 "미팅"이냐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리포트 제출과 채점은 전자우편을 통해 이뤄진다. 시험 역시 온라인상에서처리된다. 정해진 시간에 교수가 시험문제를 올리면 학생들은 각자 집에서문제를 보고 정해진 시간내에 답안을 작성해 전자우편으로 보내면 되는 것이다. 수강신청도 메뉴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서류를 들고 해당 과사무실로 이리 저리 헤매다니는 일은 이제 끝이다.
동아리 활동내용이나 학교행사 등도 모두 통신을 통해 안방에서 알 수 있다.
진로에대해 고민하고 있는 졸업예비생들은 통신망을 통해 수시로 관련분야 선배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재학증명서 졸업증명서 등 제증명 신청도 통신을 통해 키보드만 두드리면 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네트와 연결해 해외대학과 연계수업을 실시하고 학점교류까지 할 수 있다. 지구촌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글로벌대학이 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이같은 가상대학은 이미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용매체도 PC통 신, 케이블TV등 다양하다.
가상대학이 현실화되려면 대학의 학생들이 모두 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ID를 가지고 있고 대학의 각종 자료가 전산화되어 있어야 한다. 원격강의를 위한 환경마련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가상대학 설립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교육시장 개방 등 대학의 국제경쟁력 향상이 이슈로 등장하면서 가상대학 설립이 활기를 띠고 있다. 외국의 유명대학이 가상대학을 이용해 국내시장에 들어오기 전에 이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대학중 가상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경희대를 비롯해 아주 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10여군데.
경희대는 지난 학기 시범적으로 "정보사회론" 한 과목을 천리안을 이용해 재 택강의를 실시했다. 9월부터 시작하는 2학기부터는 강의과목을 문화사회학 "사회조사분석", "전산학입문" 등 12개로 확대하고 원격강의 인원도 약 1천여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 강의내용을 파일로 저장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비온라인 음성서비스, 대 화시에 얼굴사진을 제공하는 사진제공서비스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온라인을 통해 성적증명서와 수강 신청을 받고 천리안의 경희가상대학 란을 통해 대학신문, 교수들의 인적사항 등도 서비스 하게 된다.
이를 위해 경희대는 방학기간 동안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PC통신과 인 터네트이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희대는 앞으로 볼스테이트대(Ball State Univ.), 머시대(Mercy college) 등 원격교육을 실시하는 해외 자매대학과 강의교류를 통해 온라인으로 취득 한 학점을 인정한다는 장기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주대학교 역시 지난학기에 6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법률과 법률정보 처리" 과목을 재택강의로 실시했다. 이 과목이 인기를 끌자 내년부터는 과목 을 5~6개로 늘리는 등 재택강의 도입확대를 검토중이다.
성균관대학교도 오는 11월 서비스를 목표로 나우누리에 "성균관대학교 포럼" 구축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내년도 입시요강, 주요 보직교수 인사발령, 총학생회 운영계획, 장학금안내, 학생활동 소개 등이 메뉴로 포함 된다. 고려대학교 역시 나우콤과 협력, 전학생과 교직원에게 ID를 지급하고 가상대학을 위한 각종 서비스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내년 봄학기부터 온라인망을 이용한 각종 정보제공과 재택강의 등을 실시키로 하고 한국PC통신, 나우콤 등과 협의중이다.
또한 이화여대는 최근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의 이화여대 란을 통해 온라인 수강신청이 가능토록 한데 이어 2학기부터는 재택강의를 시범적으로 도입키 로 하고 세부적인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이외에 호서전문대도 재학생 1천여명에게 모두 ID를 지급,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같이 대학들이 앞다퉈 가상대학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고려대학교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정보통신이 발달해도 강의를 하면서 오가는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이나 학문하는 태도까지 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며" 컴퓨터통신은 수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굴을 맞대지 않은 강의는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희대에서 지난 학기 재택강의를 실시한 황승연 교수는 "학생들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수와 학생간에 활발히 의견 교류를 할 수 있어 밀도있는 수업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또 재택수업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단순히 의자에 앉아있으면 되는 출석수업과 달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야 하므로 공부량이3 ~4배 늘어났다"고 답변한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다 보면 출석수업을 받을 때보다 오히려 친밀감이 더 든다는 반응도 있다.
가상대학의 교육효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대학이 21세기 교육이 지향하는 "평생교육사회"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소수만의 상아탑"에서 "다수의 열린 광장"으로 대학의 개념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가상대학이 활성화되면 나이, 직업, 육체적 장애 등에 구애받지않고 보다 자유롭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가상대학 설치가 활발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 가상대학은 아직 진정한 의미의 가상대학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대학들이 가상대학 설치에 뛰어들고 있어 실제로는 "현실대학"의 보완 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 아직은 멀티미디어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험실습을 필요로 하는 과목은 설치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뿐만 아니라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와 참여하는 학생 모두 확고한 정보마인드 가 없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 가상대학이 국내 교육계의 일대변화를 가져올 태풍 이 될 것임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장윤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