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오창규-가격파괴와 유통구조 개선

작년 가을 개점한 프라이스클럽이 가격파괴의 기치 아래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자 가격파괴라는 말이 유통업계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가격 파괴 이외에도 조직파괴、 패션파괴、 심지어 경영파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틀을 깬다는 의미의 "파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을 볼 때 우리 사회가 지금 뭔가 새로운 구조、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엄청난 변혁의 격랑속 에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변혁은 거품제거를 통한 "본질의 시대"、 진정한 "가치의 시대"、 "프로의 시대"를 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을 통해 부가가치 가 없는 일은 과감히 버리고 본업、 본질에 충실한 일만 효율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사회전반적인 흐름이 유통부문에서는 가격파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격파괴는 고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생산.물류.정보.판매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판매촉진을 위한 세일이나 할인과는 다르다.

"파괴"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이고 비건설적인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가격 파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가격결정권이 제조업체에 서 유통업체로 넘어가고 있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 생산 자 위주의 시장에서 소비자 위주의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곧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득 이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도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소비의 질이 달라지게 된다. 소비자들은 소득이 늘어감에 따라 가급적 의식주에 관한 지출보다 여가나 취미를 위한 소비를 증대시키고자 한다. 소비자의 의식 주에 대한 소비감축에 착안한 것이 바로 가격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할인점이 고、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할인점인 월마트가 전세계 기업중 외형으로 4위에 올라 있고조만간 세계 최대기업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소비자들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월마트가 설립 30여년만에 세계 최대기업의 자리를넘볼 수 있게 된 데에는 정보시스템 구축에 대한 강력한 투자가 주된 요인이 었다고 생각한다.

월마트는 각 점포와 본부를 위성으로 연결하여 모든 경영정보를 전직원이 공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거래선과도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데、 판매실적.예 측.재고.점포신설계획 등 각종 정보를 1천4백여개의 제조업체와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다시피 기업간의 문제들을 각사의 노력뿐만 아니라 관련기업들과의 공동노력으로 해결해나갈 때 진정한 경영혁신은 이루어진다. 이러한 제휴는 단순한 컴퓨터 통신망의 연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조직구성원.업무처리과정.물류 등 각 부문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경영목표를 공유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제휴는 선진유통업계의 커다란 추세로서 、 전세계 유통업체들이 수평.수직적으로 제휴하면서 떠오르는 시장인 아시아지역에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커다란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유통구조의 개선없이 는 지속적인 가격파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제조업체.유통업체.소비자가 함께 유통구조의 효율화를 위해서 노력할 때만 진정한 가격파괴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인건비를 포함한 일반관리비를 대폭 줄여야 한다. 최소의 인원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어야한다. 둘째 물류센터의 확충 및 공동 수배송시스템을 통해 물류비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상품력강화를 위한 머천다이징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넷째、 제조업체와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발주에서 매입에 이르기까지 리드타임을 줄이고 전체재고를 줄여 상품의 흐름이 효율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유통정보의 흐름을 양방향으로 빠르게 함으로써 부가가치가 적은 업무를 자연 스럽게 축소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위해 종합유통관리 Supply Chain Management)의 개념을 도입、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공동 으로 재고관리 및 판매촉진에 노력하고 있다.

가격파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되는 추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가격구조가 전제되어야 하고、 유통정보시스템을 통한 관련기업들간의 정보공유가 필수적이다. 정보를 공유하면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하면 서로 신뢰할 수 있고、 서로 신뢰하면 상호 혜택을 본다.

변화는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또한 변화는 즐거움보다는 고통 을 먼저 가져다 준다. 그러나 변화는 항상 선두에서 주도해 나가는 사람에게가장 큰 보답을 한다.

우리나라 유통업체들이 강력한 유통정보시스템을 수직.수평적으로 연결하여 유통시장개방의 높은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를 기대한다.

<한국IBM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