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2월 전두환대통령은 전기통신연구소장으로서 전자기술연구소장을겸임해 구미에 내려가 있는 최순달을 청와대로 호출했다. 전대통령은 이미 2개월전에 구미의 전자통신연구소를 방문하여 반도체 개발에 대해 많은 관심을보인 바 있었다.
"요즘 반도체 개발은 잘돼가고 있습니까?" "반도체 연구시설이 겨우 갖춰져 이제 조립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잘된다고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전대통령은 갑자기 음성을 높여 야단쳤다.
"반도체 기술이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어요. 당신 반도체 개발 못하면 김일성이한테 가시오!" 그 말에 최소장은 바짝 긴장하며 전대통령에게 반도체 대해 좀 더 폭넓게이해시킬 필요를 느꼈다.
"물론 반도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도체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반도체 를이용해서 어떤 기능을 갖는 시스템을 만들줄 아는 기술도 반도체에 못지않게중요합니다. 반도체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산되는 것이 어디다 쓰이고 있는지 모르고 팔고 있는 겁니다.
사가는 사람은 반도체 자체를 파는게 아니고 그 반도체를 이용한 시스템을 만들어가지고 큰 사업을 하는건데 우리도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도록 관심을가져야 합니다. 반도체는 국산이 아니더라도 일본이나 홍콩에서 사서 시스템 을 만드는 것이 부가가치가 더 많고 좋습니다" "그것도 그렇겠구만" 그 무렵 반도체에 관한 전대통령의 관심은 매우 컸다. 그는 과학기술 관련회의가 있을 때마다 반도체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국무회의에서도 그는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느냐 못되느냐를 가름하는 핵심적인 기술 이다. 각 장관은 반도체 개발사업에 적극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전대통령은 반도체에 대해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았을까?물론 그것은 청와대 경제비서실팀의 설득의 결과였다. 5공 정부가 들어선 후김재익수석, 오명 비서관, 홍성원 비서관 등으로 짜여진 청와대 경제비서실팀이 맨 먼저 추진 한 것은 전자산업 육성책이었다.
그들은 1단계 조치로 컬러TV의 시판과 방영조치를 취한 다음 종전의 가전 제품 중심의 전자산업을 반도체와 컴퓨터, 전자교환기 등 3대 전략품목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용 기기와 전자부품산업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각 부처의 실무자들로 작업반을 구성하여구체적인 방안을 마련케 했다. 그 결과 1981년 3월에 탄생한 것이 "전자산업육성방안"이었고 이는 몇 개월에 걸친 관련부처 간의 조정을 거쳐 전대통령의재가를 얻음으로써 정부의 방침으로 확정되었다. 이처럼 청와대 경제비서실팀이 전자산업 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데는그들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5공 정부가 출범한 것은 1977년부터 시작된 제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이었고 그 기간의 주력산업으로 선정된 것은 기계산업과 전자산업이었다. 그중 기계산업은 1970년대에 단행된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 투자로 비판이 도마에 올라있었고 전자산업은 1970년대 내내 발표된 육성정책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기반구조가 매우 취약했다.
그 무렵 컬러TV는 생산되고 있었고 VTR과 전자레인지는 시험생산단계에 놓여있었는데 전자산업의 핵심이 되는 TV의 경우, 흑백TV는 그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팔리지 않았고 컬러TV는 국민계층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치 풍조를 조성한다는 비경제적 논리에 의해 방영이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가전업체들은 수출을 겨냥해 컬러TV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소화되지 않는 제품이 외국에서 잘 팔릴리 없었다. 때문에 금성 삼성 대한 등 가전 3사는 파산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대책으로 떠오른 것이 제4차 5개년계획을 수정해서 획기적으로 전산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그 계획의 수립에 참여했던 홍성원 비서관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매년 7% 이상의 성장을 해야 하는데, 사양 산업이 도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계산업과 전자산업은 매년 20~30% 성장 을해야 평균 7%의 성장을 한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그런데 기계산업은 과잉 투자 때문에 허덕이고 있었고 전자산업의 경우 말로는 전자산업의 육성을 외쳤지만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액에 비하면 6% 정도에 불과했을 겁니다.
때문에 전자산업 기반은 거의 안돼 있었어요. 조립라인에 불과한 정도였죠. 그래서 4차 5개년계획을 대폭 수정해서 전자산업에엄청난 투자를 하기로했는데 그에 앞서 전자산업의 구조를 뜯어고쳐야 할필요를 느꼈어요. 당시의 전자산업은 가전제품 위주의 조립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것을 선진국형으 로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즉, 가전 위주의전자산업 구조에서 산업전자와 부품산업으로 전환하되 그3자의 비율을 3분의 1씩 같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산업전자 분야에서는전자교환기 그리고 부품산업 분야에서는 반도체에 투자하는 것이 적격이다.
그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반도체의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나 반도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동안 전자산업의 육성을 외쳐왔던경제부처 관료들 가운데도 반도체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을 국가적인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먼저 반도체가 무엇인지를 알릴 필요가 있었다. 청와대 경제비서실 팀은 대대적인 홍보활동 을 전개하기로 하고 "반도체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를 제작해 청와대 내부와 각 경제부처에 뿌렸다.
"반도체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해도 관료들 자신이 반도체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진전이 잘 안됐어요. 예컨대, 상공부 중공업차관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자동차에 대해서는 박사인데 반도체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그럴정도이니 어디 가서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겠어요.
그래서 우선 공무원부터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해서 "반도체란 무엇인가" 라는 팜플렛을 만들게했어요. 전자기술 연구소는 물론 각 기업체도 만들어오도록 했죠. 연구소에서는 김만진 부소장이 만들어 왔는데 내용이 아주 어려웠어요. 그래서 반쯤그림을 넣어서 만화처럼 만들도록 했는데, 그 책자가 반도체를 이해시키는데많은 도움이 됐어요" 오명 비서관의 이야기였다.
전대통령을 이해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였다. 경제비서실 팀은 전대통령을 이해시키는데는 소책자만으로 부족할 것 같아 실물을 갖다 놓고 설명했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자기술연구소나 반도체 생산공장으로 모시고 가 생산 현장을 구경시켰다. 또 반도체 제품을 집어넣은 넥타이핀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전대통령은 차츰차츰 열렬한 반도체 개발론자로 바뀌였다. 그러나 경제부처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경제부처 중에서도 경제 기획원측이 반도체산업의 육성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
"반도체산업은 고도의 첨단기술을 요하는 산업인데다 막대한 설비투자가 소요되는 산업이다. 한 마디로, 반도체는 기술집약적이고 자본집약적인 사업 인데 우리나라처럼 노동집약적인 산업 실정에는 맞지 않다.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 보아 10년이나 앞서 있는 미.일의 수준을 따라잡기도 힘들거니와 설사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해도 반도체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워낙 빨라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2~3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단계의 제품을 개발한다 해도 선발국가에서는 2~3단계 앞서가기 때문에본전을 건지기도 어렵다. 또 우리에게는 그러한 위험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1970년대에실패로끝났던 중화학공업정책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전대통령에게 펼친 경제부처 관료들의 반대 논리였다. 이에 대해 오명 비서관 등은 전대통령을 이렇게 설득했다.
"우리가 반도체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도체산업 자체의 사업성 때문이 아니고, 반도체가 있어야 나머지 전자산업이 육성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전자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얼마간 적자가 나더라도 국가에서 육성해야 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컬러TV를 만들려면 색IC라 해서 컬러 TV에서 색깔 을 내게 하는 소형 반도체가 있는데, 이 반도체는 우리 기술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때문에 일본에서 사와야 하는데, 일본에서도 물량이 딸리기 때문에소매시장에서 조금씩 구입하여 매일매일 공수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예는 비단 컬러TV에만 해당되는 게아니고 모든 전자제품에 다 해당되는 겁니다. 일본이 핵심적인 반도체 부품을 쥐고 있다가 공급을 끊어 버리면 우리나라 전자제품 생산공장은 그 날로가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때문에반도체 기술의 자립이 우리나라 전자산업의핵심 과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