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I도쿄포켓전화의 지모토 사장은 PHS(간이휴대전화)가 단순히 통신수단을 다양화한다는 것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일본이 개발한 PHS기술은 외국을 모방한 것이 아니다. 이는 일본의 국제 적기여의식, 지적부가가치, 첨단기술의 창조성 등을 가늠하게 해주는 시금석이다. 또, 일본이 진정 구미와 같은 수준의 하이테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물론, PHS에는 위험성도 있다. 미국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례가 없다는점에서는 카폰이나 광케이블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그런 위험성을 초월해 PHS를 주요 산업으로 육성해 나갈 힘이 일본에 없다면 일본은 21세기 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PHS는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 정보통신산업이 본격적으로 국가의 기간산업이 되기 위한 매우 커다란 시금석인 것이다"라고 강조한 다음 다시이렇게 잇는다.
"그와 같은 시대적인 커다란 전환기에 이나모리 회장과 함께 PHS관련 업체 를다시 새롭게 창업한 것은 PHS에 의해 새로운 시대를 창출해 보려는 의욕과 에너지의 소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교세라의 회장겸 DDI도쿄포켓전화의 회장이다. 지 모토 사장이 "다시 새롭게 창업했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 84년에 역시 이 나모리 회장과 함께 제이전전(DDI)을 창업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우정성의 심의회 심의위원이기도 한 지모토 사장은 "일본 정보통신분야의 전문가 라는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는 DDI를 매출액 제로, 종업원 한 사람으로 출발해 10년 사이에 종업원 약 4천명, 매출액 약 5천억엔, 이익도 6백억엔에 달하는대기업으로 키워낸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기업의 성장속도는 전세계에서도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성장속도다. 이는 참으로 보잘것 없는 조그마한 벤처기업이 10년 사이에 정보통신의 대기업이 됐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으로서 그와 같은 활력이 일본에 도있다는 것을 나타낸 사례인 것이다.
이 DDI에 미국의 하버드나 스탠포드대학의 경영대학원 등이 크게 관심을가지고 주목하기 시작해 다수의 교수와 학생이 견학하고 있다. 지모토 사장 자신도 이들 대학원에 수차 초청되어 DDI를 대상으로 하는 사례연구 강의에출강하고 있다.
기업경영컨설턴트 다구치도 DDI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모토씨는 원거리전화요금의 가격혁명을 가져올 새 사업을 할 것을, 벤 처사업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이나모리씨에게 간곡히 권유하며 호소했다.
이에크게 공감한 이나모리씨가 그 벤처기업에 투자함으로써 DDI가 출범하게 됐다. 85년 4월의 "전기통신사업 자유화"를 앞두고 맨 먼저 이름을 내 건 회사가 바로 이 DDI였는데, 전화사업은 정부가 관장하는 국영이라야 한다는 견해가 강했던 당시에 순수 민간기업이면서, 더구나 직접 통신에 관련이 없는 교세 라라는 기업이 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DDI에 이어 철도전화 케이블을 활용하는 일본철도(JR) 계열의 일본텔레컴 사와 도로공단 등의 출자로 설립된 일본고속통신이 참가했다. 지모토씨는 DDI의 전무로서 실무 총책임자란 입장에서 수완을 발휘했는데 눈부신 급성장과 함께 3사 중에서 매출액 최고를 기록, 설립 5년 후에는 연간매출액이 1천5백 억엔을 넘어섰다.
설립 5년에 매출규모 1천5백억엔의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미국에도 흔하지 않다 "실제로 독자성, 사업방향, 사회적 사명감등의 3박자가 갖춰지면 이같은 성장도 가능하다는 표본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다구치씨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