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앞날"을 대비하는 기업의 역할

우리 사회는 그간 거의 제로 수준에서 엄청난 기술진보를 이루어냈다. 비록주변적 기술이라고는 하나 우리 사회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과 발언권을 확대해나갈 토대를 일구어낸 원동력이 됐다. 근래 들어서는 반도체산업 등에서괄목할 만한 기술적 비약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적 기술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도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그동안은 비록 선진국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이전해주는기술이었지만 이에 의존해 발전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사업이 불가능해졌고 또 우리의 기술수준이 우리에게 기술을 이전해주던 기술선진국들의 경계심을 유발할 단계에 와 있다. 따라서 양적 발전 에 치중해온 우리 경제가 이제는 질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안된다는데 많은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양적 성장 추구과정에서 우리사회는 유연성을 상실해버려 이런 경직된 사회분위기가 기술경영의 질적 전환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방식대로 물려받은책으로 공부를 하며"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결국 창의력만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담보해줄 것이다. 창의력이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모험심과 유연한 사고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 모험심과 유연한 사고는 또한 자유분방 한 삶의 방식에서 비롯하는 것일 터이다. 근래들어 기업들도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신입사원 모집등에서 고정관념을 깬 인력채용 방안을 들고 나오고 있다. "학교 가다 말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본 사람" "오라 젊은 돈키호테들이여" 따위의 구인광고 카피는 이제 고정관념에 매인 추종적 인물보다는 자유분방 하고 모험심 있는、 그래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기업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한 소프트 타입의 사고방식이야말로 하드웨어 중심사고를 벗어나 점차네트워크를 통한 지배경쟁의 시대、 가상적 세계로 나아가는 미래사회에 적응해나갈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우리 사회에 등장한 멀티플 제너레이션들을 주목할 필요 가있다. 기업이 앞장서서 이들의 특성을 지켜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여전히 억압적인 교육제도에 짓눌려 있지만 전세대들이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다면적 문화수용능력을 보여준다. 그들이 즐기는 음악은보다 복잡한 코드、 더욱 다양해진 악기음에다 그 음악에 어울리는 춤까지 총체적 무대가 구현되도록 요구한다. 그 모든 것을 감상하며 동시에 시험공부를 할수 있는 세대들이다. 어른들이 요즘의 경향은 어쩌구 저쩌구 하는 동안 그런 논평을 비웃으며 그들은 다양한 문화사조도 수렴할 줄 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나 그들의 주장을 표현할 줄도 안다.

아직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세대들을 상품소비자 이상의 의미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세대들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사회분위기 야말로 사회의 보수성、 경직성이 기업의 기술발전에 발목이나 잡는 작금의 상황을 뒤집을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기업은、 특히 대기업일수록 기술의 진보를 꾀하면서도 사회의 보수화에 기여하는 이중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런 역할의 결과가 어쩌면 이즈음의 비자금 파동과도 맥이 닿아 있는것일 수 있다.

자의든 타의든 이런 일들이 기업의 가는 길에 장애가 되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이제 기업은 미래사회의 그림을 명확히 그려내며 그런 방향으로 사회분위기를 가꾸어가는 데 능동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일인 동시에 기업발전의 장도를닦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기술의 발전수준이 개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사회분위기의 뒷받침을 받아야 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